[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특허 괴물’로 불리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들이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잇단 소송전을 진행 중인 가운데, NPE의 소송 남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특허권 보호 강화 기조로 정책 변경을 추진 중이라 소송이 더 빈번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K반도체는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며 방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EDEX 2025’ 삼성전자 부스에 반도체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명신 기자)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미국 특허 등록 수는 10만5471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유럽 5만2327건, 중국 3만1230건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만 총 38조원의 R&D 투자를 통해 한국에서 1만639건, 미국에서 1만347건의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지속적인 R&D 투자로 핵심 시장의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감사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R&D 비용으로 6조7325억원을 지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35.9%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처럼 K반도체가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은 차세대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할 뿐만 아니라 특허 소송에서 대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특허는 미래 제품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미래 사업 보호, 경쟁사의 유사 특허에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며 “북미는 다른 지역보다 특허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북미 시장에 특허 출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K반도체는 미국에서 NPE들과 소송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어드밴스드 메모리 테크놀로지스(AMT)로부터 피소됐으며, 미국계 NPE 모노리식3D와 고대역폭메모리(HBM)·3D 낸드플래시를 둘러싼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삼성전자도 지난 2023년과 2024년 특허관리법인 넷리스트에 총 4억2115만달러(약 6300억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사진=뉴시스)
NPE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거나 기술을 활용하지 않지만, 특허권 행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NPE로부터 피소된 기업들은 막대한 법률적 비용과 시간을 들여 대응하다 보니 합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 정부가 특허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NPE의 소송 남발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특허무효심판(IPR) 제도의 신청 절차를 수정하고, 제도 신청 시기와 방법을 엄격히 제한하는 변경안을 추진 중입니다.
IPR은 미 특허상표청(USPTO) 산하 특허심판원(PTAB)을 통해 등록 특허의 적절성을 다시 검증하는 행정절차로, 특허 소송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미 특허상표청이 IPR 신청을 재량으로 거절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IPR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지에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옵니다. 미 정책 싱크탱크 잭 켐프 재단의 아이크 브래넌 선임연구원은 최근 워싱턴타임즈 기고문에서 “불명확하거나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정당한 IPR 신청을 기각할 경우 부실한 특허가 검증을 피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게 될 수 있다”며 “실제 제조기업들의 희생으로 특허 괴물과 그들의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도체 기술이 국가 차원의 핵심 전략 자산이 된 만큼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통상 특허 소송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비용·시간뿐만 아니라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라며 “자체 기술 확보와 함께 실질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