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한 세대가 겪어온 집단적 고통과 역사의 진실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박정호) 심리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 2차 공판에서 원고 대표로 나선 김복희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날 법정은 광주에서 올라온 피해자들과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김씨가 증언을 시작하자 방청석 곳곳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이 끝난 후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그는 “1980년 5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국가 권력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날의 폭력은 저희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씨는 피해자들의 삶을 하나씩 호명하며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최 선생님은 아들 둘을 낳고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계엄군에 의해 차량 안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며 “이 일로 유산했고, 이후 평생 군인의 냄새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 처음으로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공개 증언한 김선옥씨의 삶도 법정에서 언급됐습니다. 김복희씨는 “당시 음악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던 김 선생님은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그분은 난소암 투병 중이라 출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2018년 그분의 선언 이후 9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픔과 고통을 같이 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이 역시 가려졌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씨는 발언 말미에서 “이 고통을 단순히 '성폭력'같은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느냐”며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이자, 한 세대의 삶을 무너뜨린 역사적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재판부를 향해 “이번 재판은 과거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며 “국가가 국민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번 소송은 5·18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가족 3명 등 총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입니다. 원고들은 2024년 12월 40억원 규모의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5·18 당시 성폭력 문제는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피해자 김선옥씨의 공개 증언을 계기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구성됐고, 이후 국방부 장관의 공식 사과가 이뤄졌습니다. 이어 출범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3년 12월 조사보고서를 통해 당시 국가에 의해 성폭력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다음 기일은 5월 15일 오후 2시 10분에 열립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