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가 연일 뉴스의 머리기사를 차지하는 요즘이다. 길어지는 국제 정세 불안에 우리 농업의 자원 의존 실태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에너지와 자원의 수급 불안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 농업은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과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 생산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는 해외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류는 물론, 농업용 비닐과 같은 석유화학 제품, 화학비료에 이르기까지 우리 농업의 필수 요소 중 대부분이 외국 에너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대외 환경이 변할 때마다 농가 경영에 불안정성을 더한다. 특히 요소와 같은 화학비료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국내 유기질비료와 퇴비로 수요가 쏠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료 가격이 인상될 우려가 있다. 결국 높은 해외 의존도는 우리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아킬레스건이 된다. 외부의 상황에 우리 농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국내 유기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 비료 자원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립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 농경지는 현재 국가 양분수지가 높은 편이며, 특히 시설재배지는 토양 인산이 과다한 곳도 많다.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연간 600만톤의 가축분뇨 액비 일부분은 적절한 사용처를 찾을 필요가 있다.
수입 비료의 빈자리를 채우고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가축분뇨 액비를 여과하여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관비로 사용하도록 처방하는 기술이다.
원래 액비는 작물을 아주심기(정식) 하기 전 밑거름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으나 최근 제도를 개선해 토마토, 딸기 등 13종의 시설재배 작물에 여과 액비를 웃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이 정착되면 전체 액비 발생량의 약 60%가 수입 화학비료 대신 시설재배지에서 사용될 수 있다.
농진청은 올해 주키니호박을 대상으로 현장 실증한 후 2030년까지 노지 채소와 과수 등 모든 작물로 관비 기준을 확대 설정하고 이를 토양환경정보시스템 ‘흙토람’에 반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가축분 퇴비의 양분 함량을 반영하여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만큼의 퇴비 사용량을 처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작물별 비료 사용 기준(246종)에 근거한 퇴비와 액비 사용량 처방 기술을 농가에 보급함으로써 농가 사용 비료량을 절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투입 자원을 교체하는 방법 외에도 농업 시스템 전반을 '외부 의존 없는 자립형'으로 전환하는 '친환경 유기농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진청은 그 노력의 하나로 깻묵, 미강, 주정박 등 국내 농산부산물을 활용한 유기질비료 자가 제조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중이다. 또한, 유기농업에서 중요한 공급원인 풋거름 작물 종자의 국산화를 위해 민관협력으로 유기 풋거름 종자 증식 재배지를 확대하고 있다. 무경운 재배, 순환 농법 등 저투입 농업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화석연료와 외부 투입 자원 의존도를 낮춰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위기 속에는 '위험'이란 뜻과 함께 '기회'도 담겨 있다. 투입 자원을 최적화하는 기술, 그리고 친환경 유기농업은 갑작스러운 국제 위기 속에서 우리 농업이 단단하게 서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고병구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환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