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대전 부품공장 화재 여파로 기아 레이의 중고차 가격이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더 길어지면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나타났던 ‘신차보다 비싼 중고차' 현상이 레이 단일 모델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레이를 위탁 생산하는 동희오토 서산공장은 27일부터 부분 생산 중단에 들어갔습니다. 오는 4월 1일부터 11일까지는 전면 가동 중단도 검토 중입니다.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의 화재로 엔진의 핵심 부품인 ‘엔진 밸브’ 공급이 끊기면서 레이와 모닝에 탑재되는 카파 엔진 생산이 멈춰선 탓입니다. 엔진밸브는 공기와 연료가 엔진 실린더로 유입되고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과정을 제어하는 핵심 자동차 부품입니다.
현대차와 기아는 재고를 활용하는 한편 대체 부품 협력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화재 피해를 입은 업체는 기술 난도가 높은 부품을 생산한 곳으로, 단기간에 동일 품질의 부품을 다른 곳에서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올해 3월 기준 레이의 출고 대기 기간은 가솔린 모델이 7개월, 레이EV는 8개월입니다. 대책 마련이 늦어질 경우 이미 7개월 이상이던 대기 기간이 추가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대기 중인 고객들의 인도 시점도 최소 2주 이상 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레이는 소형 승용차이지만 소상공인과 배달업 종사자 사이에서 목적기반차량(PBV)으로 활용되는 비중이 큽니다. 기아는 레이를 활용한 PBV를 통해 소상공인, 스타트업, 특장 업체를 주요 수요층으로 공략해 왔습니다.
특히 레이밴은 후석 좌석을 없애고 화물 적재 공간을 확보한 모델로, 택배·배달·1인 자영업자에게 수요가 집중돼 있습니다. 당장 차 없이는 생계 유지가 어려운 수요층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들에게 1년을 넘기는 신차 대기는 선택지가 되기 어렵습니다. 레이밴은 화물 경차 중 대체 차종이 거의 없어 다른 경차보다 중고차 시세 하락이 완만하고 수요가 꾸준한 편입니다. 신차 출고가 막힌 상황에서 대체재도 없다면, 이 수요가 웃돈을 얹어서라도 중고차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습니다. 대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중고차 시세를 끌어올리는 압력도 커지는 구조로, 이번 화재는 이미 올라있던 압력에 추가 충격을 가한 셈입니다.
레이는 신차와 중고차 시장 모두에서 수요가 탄탄합니다. 시장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기아 레이는 지난해 국내에서 4만8210대가 팔려 경차 판매량(7만4600대)의 64.6%를 차지했습니다. 신차로 팔린 경차 10대 중 6대는 레이인 셈입니다. 직영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를 통해 거래된 중고차 중 경차는 202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5% 내외의 점유율을 유지했고 레이는 전체 판매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습니다.
레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만큼, 신차 공급 충격이 중고차 시세를 자극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수급난으로 신차 출고가 지연됐을 때 카니발, 쏘렌토 등 일부 차종의 중고차 시세가 신차 가격을 웃돌았던 이른바 ‘카플레이션’ 현상이 이번에는 레이를 중심으로 재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카플레이션은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전기차 위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경차이자 생계형 수요가 집중된 레이 단일 모델이 공급 충격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양상이 다릅니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재를 찾지 못한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이동할 경우, 중고 레이가 비싸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