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人災①)초기대응 실패·허술한 방역체계가 재앙 불렀다

정부 '청정국' 욕심에 예방 뒷전..초동대응 실수도 확산 키워
소독약·방역차 등 인프라 부실..수의사 등 전문인력 참여 제한

입력 : 2011-02-14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이자영기자] 지난해 11월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발생 3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전국적인 확산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구제역은 전국 10개 시도와 77개 시군으로 확대됐고 살처분 된 소·돼지는 지난 11일 현재 327만 마리를 넘어섰다.  가축 살처분과 예방접종 등에 쓰인 국가 예산은 2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국내 축산업 붕괴는 물론, 유제품·사료 등 관련 산업의 타격과 매몰에 따른 환경재앙 등 엄청난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정부의 부실한 방역대책이 큰 원인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축산업과 정부 방역대책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달 27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 구제역 사태는 반세기만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며 아시아 전역에 한국발 구제역 경계령을 내렸다. 이번 구제역 사태가 세계적으로도 얼마나 강력한 가축질병 사례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번 우리나라의 구제역 사태는 발병이후의 전개 양상이나 피해 규모로 볼 때 '재앙'에 가까울 정도다. 하지만 이는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흡산 방역시스템이 이같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축질병 확산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지자체간 그리고 각 부처간 방역체계가 분산되어있는 점과 방역전문인력 및 방역 인프라의 부족 등을 문제로 꼽고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 초기의 대처 실패도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다. 또 국내 도축·사료유통 체계를 시급히 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정부 '구제역 청정국' 욕심으로 초기대응 실패 ..예방이 우선"
 
우선, 지난 11월 첫 구제역 발생시 정부가 구제역 청정국 지위 유지를 위해 백신 접종을 최대한 늦추고 살처분 방식만 고집했다는 점이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구제역 청정국'이라 할 수 없는데도 정부가 청정국 지위 유지에만 매달려 초기 대처에 실패함으로써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지난 2000년, 2002년, 2010년 1월·4월·11월 약 10년에 걸쳐 5차례나 발생한 것을 볼 때 언제든지 구제역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과는 달리 베트남, 중국 등 구제역 상시 발생국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위치도 문제가 된다.
 
정성대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은 "우리나라에 구제역 바이러스는 상존한다고 보는게 옳다"며 "역병이라기 보다 감기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살처분 방식과 예방백신접종 방식을 병행해 구제역 청정국을 유지하기 보다는 최대한 예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다.
 
백신접종과 살처분은 비용 면에서도 차이가 커 10만마리 기준으로 살처분이 보상비 1000억원 정도라면 백신접종은 5~6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 중앙정부·지자체로 분산된 방역체계.."일원화 필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방역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로 '일원화된 조직과 지휘체계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캐나다나 유럽 등 선진국들은 가축방역과 검역, 식품관리 등을 통합된 기관을 통해 수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각각 별도의 기관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가축방역은 '중앙정부가 계획하고 지자체가 수행하는 방식'으로 분산화돼 있으며, 지자체별로 대응역량은 천차만별이다.
 
김재홍 서울대학교 교수(수의학)는 "지자체의 진단기능이나 초기 대응능력은 2000년 이후 5회나 구제역 피해를 본 나라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구제역 사태도 지방방역기관의 초동대응 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됐지만 지방방역관들은 간단한 키트 검사만으로 음성판정을 내리고 국립수의학검역원에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돼지들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고 그 사이 바이러스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지방방역관이 철저한 검사역량을 갖추거나 중앙과 지자체 간 소통이 원활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이번 구제역 사태는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 '한파에 얼어붙은 소독약?'..방역 인프라도 부실
 
 
지자체 별로 가축질병에 대응하다 보니 소독약, 방역차 같은 방역 인프라 부실도 문제가 됐다.
 
가축질병 대비 소독약의 경우, 국립수의학검역원이 지정한 여러 약물들 중에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약을 선정하고 입찰한다. 지자체에서 가장 많이 입찰하는 소독약은 저렴한 가격의 구연산과 사과산이지만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이은 한파로 이들 소독약은 무용지물이 됐다. 구연산과 사과산은 물에 100배 희석해서 쓰이는데 이 때문에 강추위에는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는 것.
 
한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고려해 저온에서도 효과적인 알데히드류나 염소제 같은 소독약이 중앙당국에 의해 일괄적으로 지급됐다면 보다 효과적인 방역이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재홍 교수는 "(구제역 같은 가축질병에) 군대의 화생방부대의 전시행동요령을 참고하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라며 "중앙단위의 숙련된 초동방역팀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수의사 방역 참여 제한돼 문제 ".. 전문인력 중심 현장 방역체계 시급
 
방역 전문인력 부족도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나타난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전국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각 지역에서 예방백신을 투여하는 전문인력이 부족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구제역이 발생하면 구제역 종합상황실을 만들어 발생지역에 전문가를 파견하고 있지만, 수의직과 연구직을 더해도 440여명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숫자도 부족하지만 행정조직과 현장의 시각 차이도 문제다.
 
정성대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은 "현장과 정책결정자의 협조가 단절돼 있다"며 "현장 수의사들이 의사결정단계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김재홍 서울대교수는 "현재 농식품부의 중앙가축방역대책협의회는 사후대책 회의 성격이다"며 "초기부터 질병 별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방역정책의 오류를 수정,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화된 방역요원의 이직을 막기 위해 처우를 개선하고 새로운 방역요원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교육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봉균 서울대 교수는 "질병 발생시 수의전문가, 행정, 인력 등을 상시 구축해야 한다"며 "전국 10개 수의과학대학 재학생을 상대로 일정기간 긴급국가동원인력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토마토 이자영 기자 leejayo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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