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구제역, '인간에 의한 질병'

① 가축도, 위험도 파묻는다..정부의 구제역 `파묻기`
하천 바로옆 매몰지 `침출수`...정부 "침출수 아니다"
매몰지관리 담당하는 지자체, 장마철 사고 막기만 급급

입력 : 2011-06-01 오후 4:11:24
[뉴스토마토 박관종·최우리기자] 지난해 11월부터 올봄까지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사태는 한마디로 '재앙'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재앙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데 있다. 전국 6250개 농가의 소 15만800여마리, 돼지 331만7000여마리 등 모두 247만9000마리 가축이 살처분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매몰보상비에만 1조8000억원을 지원하는 등 구제역 발생 경비로 약 3조원을 쏟아 부었다.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고, 수많은 공무원이 순직하거나 병석에 누웠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구제역 방제를 위한 정부의 대응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편집자註]
 
(글싣는 순서)
 
① 가축도, 위험도 파묻는다..정부의 구제역 `파묻기`
② 매몰지를 파헤치다..썩지 않은 사체
③ 구제역 고착화 `대책없는 정부`..지속가능축산 고민해야 
 
살처분된 가축들이 매몰된 산과 들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2차 재앙이 본격화 되고 있다. 구제역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구제역 발생 초기 정부의 안일한 대처 방식이 환경파괴와 식수원 오염이라는 제2, 제3의 구제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말이면 장마가 전국을 덮친다. 정부는 장마철을 앞두고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 문제가 언제 불거질지 노심초사할 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하천 바로옆 매몰지, 침출수 "불안해서 못살겠다"
 
"소나 돼지 묻고 나온 물이 땅 속으로 가지 증발했겠어? 불안해서 못살지"
 
경기도 안성시 신흥리 주민 이봉래씨(78)는 축산농가와 공원묘가 들어서있는 마을에 구제역 매몰지가 추가로 만들어진 후 불안감이 더 커졌다.
 
텃밭에서 참깨농사를 짓던 주민 서신자씨(60)도 "이 동네 수돗물은 못 먹어요. 정수기 두고 먹거나 멀리까지 가서 떠서 먹지 못 먹어!"라고 거들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의 한 가축 매몰지. 커다란 가축 무덤이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불과 10m도 떨어진 곳엔 안성천으로 흘러가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안성시는 지난 1월6일부터 17일까지 소 571마리와 돼지 5508마리를 이곳 8개 구덩이에 나눠 묻었다. 매몰지는 규정상 하천과 30m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매몰지 가스배출관을 통해 소독약품(EM)을 주입하고, 흡입 호스로 침출수를 뽑아내던 용역직원은 "매몰지를 돌며 같은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안에 고인 침출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이미 침출수가 땅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에 매몰지 안에 고여 있을 침출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상수도 시설보급이 미비해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이 지역은 애초부터 매립지로는 부적절한 장소였다.
 
◇ 묻어서는 안되는 곳에 또 묻어..인근 개천 "빨간핏물과 누런 기름띠"
 
지난 1984년~1985년 쓰레기매립장으로 운영됐고, 2002년에는 안성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하자 급하게 매몰지로 선택된 지역이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일 때도 하천으로 오염수가 유입된 전력이 있는 곳이다.
 
이광수 안성시 축산과 매몰지관리팀장은 "매몰지 1km 내에 있는 4군데 농가 수질검사결과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도 "계곡지형이라 침출수가 흐를 가능성이 있다. 비가 오면 물이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침출수 하천유입 가능성을 시인했다.
 
현장을 함께 찾은 송숙 안성천시민모임 대표는 "지난 17일에 왔을 때는 빨간핏물과 누런 기름띠가 선명했다"며 "직접 시료를 채취해서 검사해보니 근처 개울과 달리 이곳에서만 암모니아성 질소와 COD(화학적산소요구량)농도가 10배 이상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송 대표는 또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시와 정부는 침출수 유출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오염된 물이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보듯 훤하다"고 걱정했다.
 
매몰지 인근 한 농장주인은 "안성시에서 페트병으로 된 생수를 주고 갔다"며 "아무래도 소돼지 매몰지가 있는 동네 지하수를 마신다는 게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과 달리 정부는 침출수 유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31일 구제역 매몰지역 7930개소 중 25%인 1982개소에서 질산성 질소와 암모니아성 질소가 먹는 물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축산폐수나 비료, 퇴비에 의한 오염으로 구제역 침출수에 의한 오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 환경부 "매몰지 인근 지하수 1982개소 오염..침출수 아니다"
 
환경부에 자문한 임현술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이 자료만으로는 침출수에 의한 오염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 교수는 "대장균 O-157과 살모넬라균 등이 검출되면 가축에서 나온 오염수라고 볼 수 있는데 환경부는 이 세균이 나오지 않았다고 분석했다"며 "환경부에 의해 검출됐다는 노로바이러스, 분원성대장균 등은 침출수에서 온 건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 토양지하수과 관계자는 "질산성 질소는 비료에 함유돼 있다. 축사에서 나올 수 있는 축산폐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음용기준 초과지점은 지자체에 통보해 급수차를 동원하는 등 상반기 중 상수도가 보급되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매몰지 유실을 차단하거나 외관을 정비하기 위한 토목공사 지원 예산으로 지난 2월 148억원을 책정했다.
 
이에 따라 3년간 구제역 매몰지를 관리 담당할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정부 지원을 받아 침출수가 세지 않도록 차수막설치, 옹벽보강공사, 배수로 공사 등 토목공사, 외관정비 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근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기보단 장마를 대비해 일단 침출수 유출부터 막고 보자는 미봉책에 148억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송숙 대표는 "자갈을 깔고 콘크리트 벽을 쌓는다고해서 침출수의 지하수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며 "이같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사업보다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 장마철 눈앞 `침출수부터 막고보자`..효과없는 토목공사에 예산낭비
 
안성시 일죽면의 매몰지 역시 개울을 철제그물망과 자갈 등으로 두텁게 메웠다. 침출수가 흐를만한 지점을 포착해 10여m가량의 개울을 자갈로 메운 것이다.
 
현장에서 자갈을 까는 작업을 마친 인부들은 "구제역 때문에 작업했다"면서도 "시에서 하는 실시하는 사업인데 답변해 주기는 곤란하다"고 입을 다물었다.
 
안성시는 환경부에서 1억5000여만원, 행정안전부 7700여만원 등 모두 2억2700여만원을 지원받아 지난 3월 매몰지 인근에 옹벽을 설치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에서 침출수 문제를 제기하자 하천을 자갈로 메운 것이다. 
 
이에 대해 인근 주민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초등학생보다 못한 발상에 할말을 잃었다"면서 "자갈사이로 물이 흐르는데 침출수는 자갈이 막아 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라고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이밖에 일주일에 2차례 이상 악취저감제와 배양균 살포, 나무심기, 우천시 천막 두르기등을 통해 매몰지를 관리하고 있다.
 
토목공사 예산을 포함해 안성시가 정부로부터 구제역 후속대책 사업 명목으로 지원받은 예산은 모두 12억원이다. 이 돈으로 소 2900여 마리, 돼지 20만7000여 마리를 묻은 213개 매몰지를 관리하고 있다. 매몰지 한곳당 540여만원이 할당되는 셈이다.
 
다른 지자체 역시 안성시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시는 올 12월까지 매몰지관리팀을 TF체제로 운영하다가 구제역이 잠잠해지면 방역과에서 상시 관리할 계획이다.
 
안성시 관계자는 "2월 말부터 매몰지관리팀을 신설해 휴일 없이 일하고 있지만 침출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4월 매몰지에서 유출된 침출수(좌), 5월 31일 공사 후 하천 모습(우)
  
뉴스토마토 박관종 기자 pkj313@etomato.com
뉴스토마토 최우리 기자 ecowoor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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