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럽 재정위기로 국내·외 금융,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서 재정건전성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특히 "미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부자 증세를 실시해야한다"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최근 기고문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부자감세 고수→재정적자 증가' 비판을 받아온 한국 정부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증세·감세 논란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올바른 정책방향을 3회로 나눠 모색해본다. ② [편집자]
MB정부 3년반 동안 감세정책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정부는 그동안 조세부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으며, 소득세·법인세와 종부세를 포함한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의 감세를 통해 내수와 투자 활성화, 고용증가 등의 경기부양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의도했던 감세를 통한 내수활성화나 기업투자 증가→고용증가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부동산 시장은 활성화는커녕 3년 내내 얼어붙었다. '부자감세'로 세부담 양극화, 재정적자 증가, 사회적 위화감 조성 등 오히려 감세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컸다는 비판이다.
특히 재정적자 증가속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함에도 감세로 재정상태가 자꾸만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 재정건전성 악화는 위험한 순간 기폭제 될 수 있어
감세정책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재정의 부실이다.
국가채무는 2010년 400조원에 가까워 3년 전보다 100조원 이상 증가했다. 국가채무 통계를 작성한 지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00년 111조2000억원으로 처음 100조원을 돌파한 이후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 2008년 309조원 ▲ 2009년 359조6000억원 ▲ 2010년 392조원을 기록하며 증가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4.8%로 3년 전보다 4%p 급등하는 등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작년 3월에 내놓은 ‘2010년도 대한민국 재정’ 자료에 따르면 2007년~2010년까지 GDP 대비 국가채무 증가율은 G-20국가 중 6위에 올랐다.
국가채무가 GDP 대비 220%인 일본이나 100%에 육박하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다고 하나 ▲ 2008년 30.1% ▲ 2009년 33.8% ▲ 2010년 34.8%로 계속해서 국가채무가 늘고 있고 여기에다 공기업 부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고, 부자감세로 15조~20조원의 세수가 덜 걷히면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방 재정지원에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되어온 종부세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지자체 재정도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됐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지방재정자립도는 ▲ 2008년 53.9 ▲ 2009년 53.6 ▲ 2010년 52.2로 감소 추세다.
◇ 법인세 감세, 투자효과 없었다
2008년 6월 조세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법인세율 5%p 인하시 투자와 성장에 미치는 효과는 실질 GDP 6조원 증가, 국내투자 10조원 증가, 취업유발 18만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정부가 기대했던 투자 유발효과가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홍헌호 시민사회경제연구소가 한국은행 국민계정 자료를 토대로 ‘한계투자성향(Marginal Propensity to Invest)' 지표를 통해 분석한 결과, 1976년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의 한계투자성향은 ▲ 1970년대 후반 2.490 ▲ 1980년대 후반 1.441 ▲ 1990년대 전반 0.932로 나타났다.
한계투자성향이 2.490이라는 것은 기업소득이 만원 늘어날 때 설비투자가 2만4900원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 IT 버블 붕괴로 기업 투자가 부진했던 이후로 ▲ 2008년 0.53 ▲ 2009년 0.36 ▲2010년에는 0.46 의 한계투자성향을 기록했다.
작년에 투자가 조금 늘긴 했지만 2009년에는 세제개편 시행 해인 2008년보다 오히려 투자가 줄었다.
최근 투자 움직임에 대해 홍헌호 위원은 “이제 기업들의 투자주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실장은 “기업이 투자를 안하는 것은 미래 전망이 불확실해서이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에게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것이 투자를 늘린 유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 4대 대기업이 보유한 현금만 해도 100조원이 넘지만 투자는 해마다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분을 포함해서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 등 대기업 중심의 각종 세제혜택이 이들의 곳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법인세를 낮추니 사내유보금이 많아지는 결과를 낳고 주주의 이윤만 높여준 꼴이 된 것이다.
◇ 계층별 부담 합리적일까? 상위 0.5%에게 감세효과의 47% 돌아가
정부는 2008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재도약 세제’라는 이름으로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당시 "전체 감세액의 53%가 중산서민층과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소득세 과세표준 계급구분 최고계층인 ‘8800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으로 분류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에 따르면, 과표 8800만원은 세전 연봉이 1억 2000만원 정도로 이 구간에 해당되는 근로소득자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머지 99.5%에게 전체 감세액의 53%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과표 8800만원 이상에 해당되는 상위 0.5% 계층은 중산서민층과 그 이하에 돌아가는 과세혜택 53%를 뺀 47%를 가져가는 셈이 된다.
이정희 의원의 조사에 의하면, 부자감세가 진행된 2008~2012년까지 총급여액 2000만원, 4000만원, 8000만원, 2억원인 근로소득자의 산출세액을 계산한 결과, 총급여액 2000만원 근로자의 결정세액은 2008년 13만원에서 2010년 7만원으로 6만원 감소했다.
반면 총급여액이 8000만원인 근로자는 같은 기간 동안 142만원의 세금 감소 혜택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현 정부의 감세 혜택이 고소득 계층에 집중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