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대출 권장하다가 갑자기 틀어막는 '어설픈 관치'

입력 : 2011-08-19 오후 3:06:41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전체 가계빚이 너무 많다고 지난 17일부터 이 달말까지 일부 은행들이 신규대출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1000조원으로 추정되는 가계빚이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돈의 순환'이 제 목적인 은행들이, 그것도 예고 없이 대출을 막은 건 지나친 감이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대출 중단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대출로 돈을 버는 은행들이 알아서 대출을 중단할 리는 없다. 예금 이자는 나가는데 대출 이자를 못 받으니 결국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국의 어설픈 '관치(官治)'가 엿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후폭풍은 모른 채 일단 틀어막자는 식이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고 서민들은 '제2금융권의 고리(高利)대출을 받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 다음 달에 대출 중단이 풀리면 대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불 끈다더니 불만 지른 격이다.
 
사실 가계빚 해결을 위해서는 '빚이 많으니 대출을 끊는다'가 아니라 '왜 빚이 많은가'를 봐야 한다.
 
◇ 빚 질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누구나 빚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빚 없이 살 수 없다.
 
한 학기 500만원, 1년 이면 100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부모든 학생이든 누군가는 대출로 해결한다. 기름값, 밥값, 공과금 등 안 오르는 게 없는 사회생활도 만만치 않다. 만약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그 고통은 더 하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더 심각해진다. 서울 20평대 전세라도 얻을라면 2억원은 있어야 하는데 연봉 3000만원을 받아 절반을 꼬박 모아도 13년 넘게 걸린다. 물론 그 사이 집값은 꾸준하게 올라 13년으로는 턱도 없다.
 
애를 낳으면 보육비에 학원비도 든다. 자식을 여의고 이제 자신을 돌봐야 하는데 늦었다. 일찍 대비하는 게 '노후 준비' 인데 다 늙어서 노후를 준비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10명 중 4명은 이 돈을 생활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등록금 등 서민생활 안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고 취임 후 물가를 잡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 정부 3년 반 동안 가계 빚은 더 늘었을 뿐이다.
 
이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며 국민들에게 대출을 권하고, 전세난이 벌어지자 또 서민들이 대출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날(18일) 발표된 전세안정대책도 집값 안정이 아닌 대출금리 인하와 한도 확대가 핵심이었다.  대출이 아무리 늘어도,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금리를 제 때 올리지도 않아 '빚 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다.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이라면 빚을 지지 않거나 빚을 적게 져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야 한다. 무작정 은행 대출을 막고 나서는 것을 보면 이 정부에서 그런 기대는 어려워보인다.
 
뉴스토마토 황인표 기자 hwangi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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