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관종기자] 30여년 동안 제 역할을 못했던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150대 주차면이 장애인과 여성을 위한 전용 주차공간으로 쓰이게 됐다.
이곳을 불법 점용해 오던 노점상들이 모두 자진철거하며 도로공사가 지어준 잡화코너로 입점했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을 불법 점거해 영업을 해온 전국 164개 휴게소 328개 노점상(행담도휴게소 제외)의 자진철거를 마무리 했다고 22일 밝혔다. 자진 철거한 노점상들은 도로공사가 지어준 '하이숍(hi-shop)'에 입점했다.
행정 대집행이나 철거용역 투입 없는 평화로운(?) 마무리 였다.
이들 노점상들은 불법점용한 주차장에서 세금 징수가 불가능한 무자료 잡화 등을 팔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수익을 올려왔다.
특히,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보호목적의 돈이 오가기도 하는 등 불법의 온상이었다.
도로공사는 그동안 불법 노점상 근절을 위해 철거명령 등 행정적 수단을 동원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한 '하이숍'이란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면서 자진 철거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 49억원 들여 잡화점 제공..'세금 연 20~50억원 예상'
'하이숍'은 불법노점상들이 사업자를 가지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휴게소 내 잡화코너다.
도로공사, 휴게소운영자, 노점상 대표 등은 최근 몇 개월 동안의 협상을 통해 강제철거가 아닌 '합법적 영업'을 택했다.
노점상은 기존 노점상을 자진철거하고 재진입을 방지하는 조건으로 '하이숍'에 판매되는 물품의 납품권과 판매원 1명 고용 혜택을 받는다. 하이숍의 소유권은 도로공사가 가지며, 운영은 휴게소 운영업체가 맡는다.
164개 '하이숍' 마련에는 모두 49억2000만원이 투입됐다. 이중 도로공사는 개소당 2000만원씩 모두 32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휴게소 관리업체는 인테리어 비용으로 각1000만원씩 16억4000만원을 들였다.
1000원짜리 물건 납품을 기준으로 180원을 휴게소가 거둬드리며, 휴게소가 거둔 금액중 50원은 도로공사의 몫이 된다. 또 불법 영업으로 징수하지 못했던 부가세만 연간 20~50억원이 될 것이라는 게 도로공사의 분석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하이숍 설치비용은 판매이익 배분과 세금징수로 빠른 시일내에 상쇄될 것"이라며 "수익도 수익이지만 불법의 온상이었던 노점상을 30년만에 근절하고 또 이들의 생계 수단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불법 노점상에 혜택(?)
'하이숍'에 입점하게 된 노점상들은 앞으로 무자료 상품을 팔거나 세금을 포탈하는 등 불법을 저지를 경우 납품권 등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원하는 만큼의 영업이 가능하다.
문제는 휴게소 운영 업체와 입점업체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입찰을 통해 선정되고 운영 주체가 정한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영업이 가능하지만 하이숍 입점자는 이 같은 절차에서 상당부분 자유롭다는 점이다.
1년 단위 재계약이라는 입점 형식을 갖췄지만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업체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불법 노점상에 점포를 내 주는 혜택을 줬다는 지적이 있다.
휴게소 입점업체 A사 관계자는 "매월 수익금의 상당부분을 사용료로 지급하는 입점업체에 비해 불법 노점상들이 수혜를 받는 것은 사실"이라며 "타 업체와 경쟁하고 수익에 전전긍긍하는 정식 입점업체에게는 힘 빠지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도로공사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로 휴게소 운영 업체 등과 긴 협의의 시간을 보냈다"며 "이들의 매출이 휴게소 운영과 도로공사 수익에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배분을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탈법을 철저히 관리해 형평성에 맞는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은 강제 철거 등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이 투입된 사례"라고 덧붙였다.
한편, 도로공사는 앞으로 휴게소에 재진입하려는 불법노점상은 경찰청과 공조, 행정대집행 등 법률절차로 강력히 차단할 방침이다.
또 현행 도로법 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명시돼 있는 처벌규정을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강화하기 위한 고속국도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뉴스토마토 박관종 기자 pkj3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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