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은정기자]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되고 미국 더블딥 위기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재정위기가 최근 국내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리고 있다. 금융 패닉은 시장불안에 그치지 않고, 고물가와 가계부채, 재정과 경상수지 악화, 부동산시장 침체, 성장잠재력 약화 등으로 먹구름이 짙어가고 있는 국내 거시경제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글로벌 및 국내 경제·금융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보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⑥
"남의 집 불구경은 하고 자기집 타는줄은 모른다"
세계가 유럽 재정위기라는 '큰 불' 진화에 나서는 동안, 경제대국인 미국 침체의 '불씨'가 남아있단 사실은 잠시 잊은 듯 하다.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성장률과 고용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서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침체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비 로젠블룸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연구담당 책임자는 "미국의 경제가 거의 정지된 상태"라며 "만약 경제가 계기판이었다면 모든 경고등에 불이 켜졌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금융시장은 유럽발 소식에 출렁이고 있지만, 유럽 위기에 숨겨진 미국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큰 불' 낼 준비를 하고 있다.
◇ 미국 지표, 겉만 개선됐다
지난주 미국의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전주보다 3만7000건 줄어든 39만1000건으로 지난 4월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전주 수정치 42만8000건과 시장예상치 42만건보다 크게 떨어진 수치다.
수치상으로는 고용시장이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부의 설명은 기대와 다르다. 예년보다 늦은 부활절이 등 시기적인 영향이 컸다는 것.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은 직원들을 줄이지도, 늘리지도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확정치는 1.3%로 전달 발표됐던 잠정치 1.0%보다 상향됐다. 시장예상치 1.2%와 전분기 성장률 0.4%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유로존 재정적자 위기 등 불안요소가 여전히 남아있어 경제성장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1분기보다는 성장률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고용과 소비 증가를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속도다.
션 인크레모나 4캐스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고용시장은 여전히 실망스러운 상황"이라며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도 '잃어버린 10년' 겪을 수 있다..소비 정체
소비지출이 미국 경제의 70%를 이끌고 있지만 미국 경제를 살리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왔다. 가계 부채 증가로 소비지출은 수년간 멈춰있다.
블랙록 투자연구소에 따르면, 개인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54%로 경기후퇴가 일어나기 전 기록했던 최고치보다 7.5%포인트 낮아지는데 그쳤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2009년 소비 지출이 2.8% 감소한데 이어 지난해에도 2% 줄었다고 발표했다. 높은 실업률과 임금 인상 정체, 원자재 가격 부담, 증시 변동성 등이 이어지지면서 가계 부채속도를 늦추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본의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재현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난 일본의 경기침체는 2000년대 가계 부채축소를 늦추면서 소비 침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美 주택시장 '아직 바닥아니다'..소비심리 악화로 전이
미국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됐던 주택시장은 아직도 바닥을 찾고 있다.
모기지 금리가 제로수준으로 30년만에 최저 수준이지만 집을 사려는 수요는 없고, 이로 인해 공급이 줄자 가격도 계속 떨어지는 흐름이 수년간 계속되고 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지난달 주택매매지수는 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주택착공은 3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7월 S&P/케이스 실러 주택가격 지수는 전년동기 대비 4.1% 하락했다. 또 20개 지역 중 18개 지역에서 집값이 떨어진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0명 이상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주택 가격이 올해 2.5% 하락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집값이 최고 수준이었던 지난 2005년에 비해 31.6%가 떨어진 상태로, WSJ은 향후 2015년까지 주택시장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는 '역부의 효과'를 일으켜 다시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준다.
에릭 로젠그린 보스턴 연준 총재는 "주택가격 하락은 금융기관들의 자본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실물경제 파급효과도 약화시킨다"고 경고했다.
◇ 미국 부양책, 비난 봇물.."효과 없다"
"유로존 위기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안일한 대응보다, 일관된 재정정책을 시행하는 미국이 더 엉망이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유럽보다 미국의 경제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의 장기실업 문제를 '국가 위기'라고 규정하며 추가 부양책을 시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이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와 같은 추가 부양책이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데 의문"이라며 "많은 가계와 기업들이 채무를 줄이기 원하는 상황이라 금리가 아무리 더 낮아져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호니그 캔자스 연준 총재는 "금리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려 민간소비를 부양하면 결국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경제 불균형이 초래된다"며 "통화정책의 효과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준 총재도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진작 메커니즘은 이미 손상됐고, 연준의 정책이 커다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돈을 찍어 내는 것은 우리 주머니의 달러를 더 가치 없게 만들어 미래에 인플레이션 위험을 키울 뿐"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일자리 법안도 공화당의 반대로 난항이 예상되는 등 미국 정치권이 내놓은 정책들은 갈 길이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