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中企 적합업종 선정, 경제 민주주의의 시발점!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입력 : 2011-11-01 오전 9:00:00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결과는 사뭇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장들은 초석을 놓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품목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몇달 동안 사회적 이견이 휩싸여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던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마침내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적합업종 이해당사자들이 논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선정한 16개 품목을 발표했다. 사업이양 품목에 세탁비누가 포함됐고, 골판지상자·플라스틱금형 등 4개 품목은 진입자제를 권고받았다. 또 고추장·간장·막걸리 등 11개 품목은 확장자제를 권고받았다. 즉 대·중소기업이 해당 품목별로 어떤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해 약속한 결과를 밝힌 것이다.
 
이번 약속은 외압이 배제된 순수 민간협의로 이뤄진 만큼 무엇보다 이행여부의 확인이 중요하다. 위원회는 향후 대기업의 이행여부와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 여부를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언론, 경제단체, 기업 등으로부터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대체로 환영하는 논조보다 의구심을 피력하는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야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가 고심 끝에 내놓은 결과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곤혹스럽다.
 
불만의 목소리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첫째는 배려이다. 일부 중소기업은 이번 논의에서 대기업의 '통큰' 배려가 있기를 기대한 듯하다. 대기업이 사업을 포기하기로 속속 선언하는 모습을 그렸던 듯하다.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기업을 아예 철수시켜라"고 주문하던 어느 기업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시장원리가 존중받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기업군을 강제하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적합업종을 선정하는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느 정도 대기업에 대한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사회적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어 굳이 책임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대기업은 스스로 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할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그동안 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실천적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 유행처럼 번진 윤리경영이나 환경문제에도 대기업의 관심이 무척 늘었다.
 
또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실천과제를 담아낸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책임(ISO26000)이 경영철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 책무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기금도 출연하고 있다. 최근 모 기업 총수가 수 천억원을 기부한다고 밝혔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연일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는 기업인들의 봉사활동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미명으로 추진되는 홍보활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 동반성장을 약속한 대기업이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렸다. 즉, 진정성이 의심되는 경우의 수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도 포함된 것이다.
 
둘째는 적합업종 품목 선정의 실효성 문제다. 이번 선정은 순수 민간협의체인 위원회가 주도하여 맺은 약속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 당연하 처벌규정도 없다. 약속을 깨더라도 물리적 방법을 동원해 제재할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일부의 주장처럼 정부 부처간 합의를 통해 법률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적합업종의 경우 한국경제의 독특한 체제 아래서 시장경제의 근간을 허물지 않으면서 동반성장 할 수 있는 기반을 양자간 자율적으로 합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적합업종 선정은 많은 소통과 논의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그 결과로 이뤄진 합의사항을 일궈냈다면 이를 지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합의 위반이며, 위반 기업은 사회적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법에 의한 강제에 익숙해져 있다. 그간 대·중소기업간 강제가 아닌 양자간 대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의 발전을 일궈야 한다. 논의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일구면서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 일환의 첫번째로 적합업종 선정이 시작됐다. 해보지 않고 조바심을 내지 말자.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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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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