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금, 빚내서 갚아라? 카드사들 '꼼수'

입력 : 2011-12-16 오후 4:24:47
[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카드론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피해보상 요구가 커지자 카드사들이 이들에게 또 대출을 내서 보이스피싱에 의한 대출을 갚도록 종용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이자면제, 청구유예 등을 조건으로 새로 카드론 대출 등을 받아 보이스피싱으로 빠져나간 대출금을 우선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피해자가 보이스피싱에 따른 카드대출을 '금전적 피해'가 아닌 '갚아야 할 채무'로 인정하는 꼴이 되므로, 피해자들이 향후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보상을 받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카드사, '분할납부·무이자' 조건 내걸며 채무상환 유인
 
16일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부 카드사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신규 카드론 등을 받아 보이스피싱으로 발생한 대출을 먼저 갚으면 대출금 상환시 '혜택'을 주겠다며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을 상대로 카드사들이 대출금 분할납부, 이자면제, 청구기간 유예 등의 조건을 내걸며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카드사는 비공개를 조건으로 합의하면 원금을 일부 탕감해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상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자 카페를 운영 중인 이 모씨는 카드사들이 피해자들에게 제시하는 유인책은 여러 가지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최장 3개월간 납부를 유예해주고 이후 분할상환을 가능케 해줄테니 금감원에 넣은 민원을 취하하라는 경우도 있고, 현재 17% 이상되는 카드론 금리를 7%대의 일반 대출금리로 전화해주겠다고 유인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당 평균 피해금액이 2000만원에 달해 피해자들은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 물기도 빠듯하다.
 
게다가 아무리 사기대출이어도 원리금 상환을 연체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어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카드사들이 내건 조건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구제길이 막막해 보이는 상황에서 카드사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채무를 변제하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 카드사 꼼수에 '내용증명 필수'
 
하지만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대출금을 상환하면 이는 결국 본인이 대출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돼 향후 보상을 받기 어려워진다.
 
'피해구제신청서'에 서명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부 카드사들이 피해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피해구제신청서'는 이름과는 달리 사실상 채무를 갚겠다는 '서약서'다.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 충격으로 사망한 60대 남성도 모 카드사의 '피해구제신청서'에 서명한 사람 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모임 카페 대표 이 모씨는 "돌아가신 분은 피해구제신청서라길래 사인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이 대출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실히 납부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어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무조건 상환을 할 것이 아니라 '내용증명' 등을 통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서로'의 문정균 변호사는 "만약 신용등급 하락이나 채권추심 압박 때문에 카드사의 요구대로 보이스피싱 카드대출을 갚고자 할 경우 카드사에 내용증명을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무상환은 신용등급 하락 등 혹시 발생할 지 모를 불이익 때문이지 채무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향후 보상을 받게 될 시 상환액의 즉각적인 변제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긴 내용증명을 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카드사들, 조정 없이 곧바로 소송 진행
 
법무법인 '서로'를 통해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들은 현재 73명으로 지난 10월31일까지 소송 참여 의사를 밝혔던 80명에서 7명 줄어든 상태다. 일부 피해자들이 카드사와 합의 등을 이유로 스스로 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로'는 피해자들을 대신해 하나SK카드를 제외한 신한, KB국민, 삼성, 현대, 롯데, 우리, 씨티카드를 상대로 개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6일 조정 일정이 잡혀 있는 롯데카드를 뺀 나머지 카드사들은 조정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거나 조정을 통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카드사들은 피해자들이 제시한 피해 원인을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태로, 사기범들에 의한 대출여부와 상관 없이 결과적으로 대출이 발생했으므로 피해자들은 카드사에 상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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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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