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형진기자] 앵커 : 올 한해 전세계 가전 시장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세계가전전시회, CES가 나흘간의 일정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형진 기자, 이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다녀왔죠? 이건희 회장이 일본은 지쳤고, 중국은 멀었다라는 말로 CES를 평가했는데요? 취재기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요?
기자 : 이 회장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12일 CES 전시장 내 삼성부스를 찾았습니다. 여기서 이 회장은 우리나라 가전업계와 일본, 그리고 중국을 평가했는데요. 일본은 앞선 나라였지만 힘이 빠진 것 같다고 표현했고, 중국은 열심히 따라오고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장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자신감을 언급한 내용은 한중일 평가에 앞서 선도제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도 읽을 수 있었는데요. 이 회장은 TV나 갤럭시폰이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더 깊이 더넓게 1등 제품을 만들어내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는 올해 글로벌 경제 위기가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아주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할 것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앵커 : 그렇군요. CES 기간내내 삼성과 엘지 간 신경전도 치열했는데요. 특히 TV 시장선두 자리를 놓고 벌인 수장들간의 설전도 유명했습니다?
기자 : 네. 포문은 LG전자 쪽에서 먼저 열었는데요. 공식 개막 하루 전 열린 LG전자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미국인 디렉터가 북미 3D TV 분야에서 3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거의 근접했다고 발표하자 삼성 쪽이 발끈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또 권희원 LG전자 사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올해 3D TV 시장점유율 1위를 선언하면서 양측간 신경전이 고조됐습니다.
다음날 열린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엘지는 비교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색적인 발언과 함께 후발 사업자와의 점유율 격차를 최대로 벌리겠다는 ‘초격차’ 발언이 나오면서 양측의 신경전은 최고조에 이르게 됐죠.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OLED TV 상용화 문제에서도 LG전자는 공식 프레스컨퍼런스 때 말을 아끼다가 연내 상용화를 외쳤고, 삼성전자도 뒤질세라 과잉 중복 투자 우려에도 아랑곳 않고 TV 형 OLED TV생산설비 투자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호언 장담했습니다.
심지어는 양사 모두 현재보다 20~30% 싼 저가TV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내용도 발표했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공약 때문에 현지 취재 중인 기자들은 신경전도 좋지만 허수를 남발하는 각 사 수장들의 말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다수였습니다.
앵커 : 일단 사장들의 발언이니까 지켜질지 어디 두고 봐야겠군요. 또 한가지 큰 해프닝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여기 전시품은 대부분 가짜’라는 발언을 했다구요? 일부 경제지에서는 폭탄발언이라고 하면서 이 사장의 발언을 몰아세웠는데 어떻게 된거죠?
기자 : 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일부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이곳 전시장에 전시된 제품 상당수가 가짜이다. 진짜는 별도로 마련된 곳에 전시 중’이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오래 전부터 루머로만 돌았던 사실이 이 사장의 발언 때문에 사실로 확인된 겁니다. 가전 시장에서 베끼기가 난무하기 때문에 각 사가 보안에 상당히 신경쓰고 별도의 주요 제품은 주요 인사들에게 보여준다는 설이 가전시장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거든요.
실제로 전시장에 가보시면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필기구로 무장한 사람들이 전시품을 찬찬히 뜯어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그 사람들은 전시품을 분해하고도 남을 수준으로 보였습니다. 기자인 제가 봐도 경쟁사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 등 주요 가전사들은 딜러들에게 보여줄 주요한 제품을 별도로 전시하고 일부에게만 개방하고 있었던 겁니다. 삼성전자 같은 경우에는 TV를 자유자재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에볼루션 키트와 에볼루션 키트를 통해 장착할 수 있는 데이터 분할 송수신이 가능한 세트 등이 극비로 다뤄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터 분할 송수신이 가능한 세트는 윤부근 사장이 현지 기자간담회때 잠시 언급한 바 있는데요. 저도 삼성전자에게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에 잠시 충격을 받기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삼성전자가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데이터 분할 송수신 기술은 전세계 스마트TV 사업자에게 숙원과도 같은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기술은 삼성전자가 자체 비용으로 초대한 북미 딜러 등 수천명의 주요 인사들에게 공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이재용 사장 등이 호스트를 맡아 영업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 정말 가전업계가 치열하군요.해외 가전사들 소식은 없나요?
기자 : 일단 일본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말마따나 일본 가전업계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 때문에 현상 유지가 급급해 보였거든요. 선도하기는 커녕 현상 유지가 더 시급해 보였습니다.
일본 가전기업은 글로벌 가전사라기보다 내수 시장을 지키는 내수 사업자에 비유하는 것이 더 맞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삼성과 엘지가 일본 진출을 꾀한다는데 일본 유통사들의 횡포를 잘 피해낸다면 일본 가전사들은더 힘든 지경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CES의 뚜껑을 열기 전까지 중국의 매서운 추격이 예상됐는데요. 막상 전시회가 시작되니까 그런 우려는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잘 지켜봐야 할 것이 중국이 카피캣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적으로 선도 기술이라 생각하는 이상한 기술들도 내놓았다는 점입니다.
뇌파로 TV를 움직이는 기술 등 어찌보면 동작도 잘 안하고 우스꽝스러워보이는 시도였지만 중국이 새로운 시도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반증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오히려새로운 도전에 망설이는 한국보다 중국의 우스꽝스럽지만 새로운 개념의 기술 개발 의지는 더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이번에 눈에 띄는 것은 스마트카였습니다. 행사 기간 중에자동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고 가전사 임원들의 관심도 집중되었는데요. 행사장에서 만난 한 LG전자 임원은 “요즘 자동차를 자동차 메이커가 만드나? 전자 회사가 다 만들지’라는 묘한 얘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아차도 내비게이션과 자동차의 전자시스템을 연결한 스마트카를 단독 출품하기도 했는데, 스마트카 시장은 앞으로 상당한 트랜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동차회사와 가전회사간 합종연횡도 향후 시장에서 지켜볼 관전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 애플 얘기는 없나요?
기자 : 애플의 그림자는 올해도 여전했습니다. 애플은 CES에 출품은 안 했지만 자사의 협력사를 위한 공간, 아이라운지를 마련하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주력제품에 대한 주변기기 전시를 도왔습니다
이 때문에 북쪽 전시관은 새로운 애플 제품만 발표하지 않았다 뿐이지 애플 전시관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애플의 색깔이 많이 옅어졌다지만 애플이 참여도 안했고, 새 제품도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정도 전시가 이뤄졌다면 상당한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나 엘지전자가 자사 부스에만 신경 쓰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점이 애플과 대조적으로 비춰져서 조금은 씁쓸했는데요. 이제 리딩 사업자로서 여유를 좀 가지고 협력사를 좀 챙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혼자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모두가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앵커 : 이번에 미국 내 여론이 CES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려요. 독일IFA(이파)때도 한국업체가 빠지면 전시회 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렸는데 어떤가요?
기자 : 일단 미국 내 여론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죠. GE 등 미국 내 가전사들이 다 빠졌으니까요. 이번에 마이크로소프트도 내년부터 빠진다고 선언했구요. 미국 가전업체가 없는 CES가 무슨 의미냐는 거죠. 이 때문에 한국 업체마저 빠지면 CES는 망조로 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는데요.
사실은 우리 업체가 CES를 빠진다고 해서 CES가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좋은 자리에 가장 큰 부스를 만들고 있거든요. 만약에 그자리를 빠진다면 하이얼이나 하이센스 등 중국 업체들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가전업체들이 돈이 없어서 그 자리를 차지 못하는 게 아니고 레벨 차이 때문에 메인 부스를 못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도 CES나 IFA 출품을 포기하지 못하는 겁니다.
자칫했다가는 제품 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까지 베끼는 카피캣이 CES 등 국제전시회를 장악하고 큰소리를 치는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앵커 : 그렇군요. 하나더 묻죠. 인텔의 모바일AP 출품이나 퀄컴의 PC사업 진출은 어떤가요?
기자 : 일단 퀄컴의 PC사업진출부터 말씀드리죠. 퀄컴은 통신용칩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4세대이동통신부터 맥이 끊기면서 성장동력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PC시장으로 진출에 PC에 통신용 칩을 내장하는 전략을 쓰려고 하는데 사업성은 불투명해 보입니다. PC시장이 급격히 우하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요. 퀄컴이 획기적인 기술이나 생산원가 절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저그런 사업자가 되기 딱 알맞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텔의 모바일AP 개발인데요. 사실 인텔은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와이브로 통신칩을 개발해 모든 디바이스에 심겠다는 전략을 세웠거든요. 그런데 전세계 통신사업자들이 LTE를 선택하면서 야심찬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번에 모바일AP 개발도 우회전략의 일환처럼 보이는데요. 이재용 사장이 폴 오텔리니 인텔CEO를 삼성전자 신종균 무선사업부장이랑 같이 만나면서 삼성전자와 합동으로 관련 시장에 뛰어들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무선 쪽에서 휴대폰 외에 무선장비 사업에서 성공을 하고 싶어하고 인텔은 모바일 디바이스에 인텔인사이드를 하고 싶어하거든요. 그렇다면 두 사업자가 와이브로처럼 손을 잡는다면 강력한 연합군이 가능해 보이는 환경입니다.
이번에 이재용 사장이 폴 오텔리니 CEO를 만나서 이런 연합군 형성에 일조했다면 미래 성장동력 마련에 큰 역할을 한 셈이 됩니다. 결과는 조금만 더 지켜보면 나올 것 같군요.
앵커 : 네. CES 얘기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취재하면서 느낀 소감이 있다면요?
기자 : 시차 적응이 안되고 우리나라처럼 초고속 인터넷이 아니라 동영상 송출에 애를 먹었는데요.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가 분명히 가전시장의 리딩 사업자인 것은 분명한데 아직까지 앞서 나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대폰 시장에서 존재감 자체가 없던 애플이 모바일 생태계를 내세우며 스마트폰 시장을 열고 기술과 트랜드를 선도했던 것처럼, 우리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도 그런 자신감과 모양새를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또 코트라를 통해 CES에 자신들의 기술을 출품했던 중소기업들에게도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