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유나기자] 대형 조선사와 중소 조선사에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조선업계 '빅4'에 속하는
현대중공업(009540)과
STX조선해양(067250)이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대박을 터뜨렸지만, 같은 날 중형 조선소 삼호조선은 청산절차를 밟았다. 그야말로 '웃는'사람과 '우는' 사람이 따로인 것이다.
대형조선사들의 잇따른 수주 소식은 중소 조선사들에게는 그저 '남얘기'일 뿐이다.
◇지난해 중소조선사 수주액 36억달러 그쳐..수주 수요·일감 '뚝'
지난해 국내 대형조선사들은 드릴십 등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수주호황을 누렸지만, 중소 조선사들은 해운시황 침체로 벌크선과 유조선 등 일반상선 부문에서 발주가 뚝 끊기면서 수주난을 겪어야 했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소조선사들의 신규 수주액은 36억4000만달러에 그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262억1000만달러 수주액의 15%에 불과하다.
또 지난해 말 수주잔량은 537만톤(CGT)으로, 전년에 비해 36.1%나 감소했다. 이는 전분기에 비해서도 14.8% 감소한 수치다. 수주 수요가 이토록 침체된 것을 고려해보면 일감이 줄어든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중소 조선사의 그늘이 더욱 짙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이중고' 때문이다. 선박 고급화와 대형화로 인해 선박 수주는 '빅3' 업체에 몰리고, 중형 규모 선박 부문에서는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게 밀린다.
업계 관계자는 "주력 선종인 벌크선(건화물선)과 유조선 등 일반 상선 분야가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다"며 "중소 조선사가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조선사, 수주 가뭄 심각..벼랑 끝 몰려
지난 14일 파산절차에 들어간 삼호조선은 주로 1만~2만톤급 유조선을 건조하던 회사로, 한때는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00대 조선소에 포함될만큼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모기업인 삼호해운이 지난해 4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자금사정이 나빠졌다. 2010년 삼호드림호와 삼호주얼리호 등 선박 두 척이 잇달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이후 어려움에 빠진 것. 결국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지난해 5월 최종 부도 처리됐고, 법원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여파로 11월부터 선박 건조가 중단됐고, 삼호해운의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수주했던 15척 선박이 모두 취소됐다.
삼호조선은 현재 3척의 선박을 수주잔고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선박을 무사히 인도해야 임직원들의 밀린 급여와 협력업체 대금 결제를 겨우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삼호조선 뿐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통영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중소 조선사 상황은 암울하다.
21세기 조선은 현재 3만4000톤급 벌크선 3척을 만들고 있지만 오는 6월이면 건조 작업이 끝난다. 6월 이후로는 건조 물량이 없는 셈이다.
신아SB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08년 이후 단 1척도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 4년 이상 수주가 없는 것. 현재 4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올 하반기면 끝나게 된다. 신아SB는 지난해 SLS조선에서 사명 변경과 함께 조선소 재건에 의욕을 보였지만 수주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세코중공업 등은 작업장을 잠정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조만간 문 닫게 생겼다'는 우려가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통영에서 가장 큰 조선소인 성동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채권단이 자금 지원을 검토 중이다. 내년까지 정상화에 필요한 1조2500억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제2의 삼호조선 출현' 우려..대책 마련 시급
이번 삼호조선의 파산이 중소조선사 몰락의 신호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중소 조선사들의 연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3~4년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사실상 중소 조선사들에 일감이 끊어진 지 오래여서 제2의 삼호조선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한계 상황에 다다른 중소 조선소들에게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
배영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조선사들이 해왔던 벌크선 시장은 한동안 기대하지 못할 것"이라며 "일감이 떨어진 현재 상황에서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특정 소규모 특수선이라든지 부분 블록 제작 등 조선사들 스스로가 부분적으로 특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선종을 바꾸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화하는 일이 사실상 쉽지만은 않다"며 "조선업은 매우 크고 장대한 산업이라서 터닝을 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올해 해양물량이 많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중소조선사가 이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원을 무작정 해주기도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앞서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말 보고서를 통해 현재 중소조선 시장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양 연구원은 "현재의 중소 조선소 건조능력을 감안하면 1년반 이하의 일감이 남아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올해 안에 바닥날 것"이라며 "현재 중소조선시황과 조선소들의 재무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의 위기는 시장논리에만 맡기기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 조선소의 붕괴는 후방산업까지 동반 붕괴시키므로 국내 산업과 고용유지를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며 "정부가 중소조선업체들의 신규수주를 돕기 위해 특별지원 등을 검토하고 중소 조선소의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