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21일 박희태 국회의장, 전당대회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정당법(제50조 제1항) 위반 혐의로 각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안병용 새누리당 은평구 당협위원장은 금품수수 혐의(제50조 제2항)로 구속기소 된 바 있다. 가담 정도가 경미한 박 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와 돈을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에게 전달한 곽모씨 등 실무자들은 기소유예, 불구속 입건으로 각각 처분됐다.
이로써 지난달 4일 고 의원의 폭로에서 비롯된 '돈봉투' 의혹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여만에 현직 국회의장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기소하면서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 19일 국회의장 공관을 직접 방문해 16시간에 걸쳐 박 의장에 대한 강도높은 조사를 벌이는 한편 김 전 수석, 조 비서관과 이봉건 정무수석비서관 등 핵심 관련자들을 소환해 추궁한 바 있다.
◇검찰 "박 의장 유·무죄, 법원 판단 받아볼 것"
이날 '돈봉투 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 검사는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박 의장을 기소했다"고 말했다.
정 차장은 이어 "상식을 배제한 채 엄밀한 법적인 증거만으로 판단을 한다면 박 의장의 기소 여부에 대해 수사팀은 굉장히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수사팀은 '이 정도 부분이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고 결론을 내려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정 차장은 박 의장에 대한 유죄에 확신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신이 없다는게 아니라 선거법은 엄격하게 증거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박 의장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 (의원들에게)전달하라는 박 의장의 명확한 지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희태·김효재·조정만 '공동범행' 결론
검찰은 이번 '돈봉투 사건'을 박 의장과 김 전 수석, 조 비서관의 공동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의장 등은 2008년 7월1일부터 2일경 고 의원에게 300만원이 들어 있는 돈봉투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안 위원장은 같은 해 하순경 은평구의원 5명에게 2000만원을 주면서 당협 사무국장들에게 50만원씩 전달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다.
정 차장은 "단순 전달자 등 실무자 위주로 처벌되던 종전의 수사 한계를 넘어 당선자·총괄책임자 등 금품제공을 주도한 현직 국회의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철저히 수사해 금품제공에 관여한 사실을 밝혀냈다"며 "대규모 전당대회 위주의 과정에서 선거캠프 조직을 이용한 금품제공 관행이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박 의장과 김 전 수석, 조 비서관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분담해 돈봉투 사건을 공모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 차장은 "세 사람이 소상하게 어떤 역할을 분담했는지 설명하려면 관련자들의 진술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다들 부인한다"고 말했다.
정 차장은 다만 "전달된 일부 금원이 박 의장의 계좌에서 나온걸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김 전 수석이 선거캠프를 총괄하며 돈봉투 사건에 관여했다는 진술증거를 확보했다. 조 비서관은 (돈봉투 사건) 그 과정에서 재정을 담당했기 때문에 세 사람이 공모를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병용 구속기소와 형평성 논란..돈봉투 받은 의원 더 없나?
검찰은 '돈봉투 사건'의 핵심 인물인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데 대해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소속 구 의원들에게 돈봉투 전달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 위원장에 대한 처분과 비교할 때 형평성 논란도 있다.
아울러 검찰은 고 의원실 외에 다른 의원실에 전달됐을 개연성이 있는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낸 사실이 없어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봉투 사건을 검찰이 두달 가까이 수사한 것에 비해 별다른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차장은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에게도 여러가지 의심가는 정황은 있었으나 신병처리 등 처벌 수위는 수사 결과 증거법칙에 따라 인정되는 범죄혐의에 상응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차장은 "박 의장이 사퇴를 선언하고, 김 전 수석이 공직을 사퇴한 점도 (사법처리 수위에)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공직 사퇴도 사법처리 수위 결정에 고려
정 차장은 또 "고 의원 외에 돈봉투를 받은 다른 의원들을 확인하기 위해 선거캠프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하고, 계좌추적 등 과학적 수사 방법을 모두 동원했으나 다른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고 의원실에 돈봉투를 전달해준 이른바 '뿔태남'으로 불리는 곽씨를 직접 불러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뿔테남' 곽모씨는 고 의원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사실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어 결국 다른 의원들에 대한 돈봉투 전달 부분은 확인이 불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앞서 고 의원실 관계자는 "(곽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국회에서 카트를 끌고 왔고, 카트 위에는 대형 마트에서 사용하는 비닐 쇼핑백이 올려져 있었다"면서 "쇼핑백 안에는 '노란 서류봉투'가 여러개 담겨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돈봉투가 들어있는 것을 봤다고 해서 다른 의원들이 돈봉투를 받았다는 직접 증거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안 위원장이 은평구 의원에게 2000만원을 제공한 것과 관련,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이 포함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차장은 "고 의원에게 전달된 300만원의 출처는 박 의장의 돈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은평구 의원들에게 전달된 2000만원의 출처는 관련자들 모두 전달사실 자체를 극구 부인하는 등 그 출처 및 범행 가담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차장검사는 이어 "김 전 수석의 경우 금품 전달 장소에 동석했다는 취지의 유일한 진술이 있으나, 그 내용이 불분명하여 그 진술만으로는 2000만원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