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판결, 대법원 판례와 배치

양민학살사건 등에서 대법원은 소멸시효 배제

입력 : 2012-02-24 오후 4:17:39
[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정수장학회의 모태인 부일장학회의 재산이 국가에 의해 강제로 헌납된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유족들이 이를 돌려받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곤란하게 했다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앞으로 항소심, 상고심에서의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 부장판사)는 24일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김지태씨의 유가족들이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국가가 가져간 김씨 소유의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과 토지를 돌려달라"며 낸 주식양도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이를 행사해야 한다"며 "김씨가 이 사건 주식을 증여한 1962년 6월20일부터 10년이 경과할때까지 증여 행위를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김씨의 취소권은 이미 소멸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월26일이나 과거사 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및 권고결정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취소권의 제척기간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유족들의 주장도 들어주지 않았다.
 
재판부는 "민법이 정한 취소권의 제척기간 제도는 소멸시효 제도와는 달리 일정기관의 경과에 의해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획일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로써 상대방과 거래 관계자 등의 법적 지위를 안정적으로 도모하는 것에 입법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아울러 소멸시효기간에 대해서도 "국가는 불법행위가 있은 때로부터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도과했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은 시효로 소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김씨가 석방된 날인 1962년 6월22일로부터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국가의 위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는 국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된 후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대법원 판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문경학살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이날 판결과 다른 판결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했거나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유족들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후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고 있다"면서 "소멸시효완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은 "주식의 증여행위가 강요에 따른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과거사 위원회가 2007년 6월4일에 한 진실규명 및 권고 결정을 송달받은 날"이라면서 "그로부터 3년 이내인 2010년 6월2일자 소의 제기로써 주식의 증여행위를 취소한다"는 김씨의 유족측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김지태씨의 유족측은 이날 판결 선고가 이루어진 직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갈 것"이라며 항소 의지를 밝혔다.
 
유족측이 항소할 뜻을 내비침에 따라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과를 내놓은 1심 판결이 2심에서는 어떤 판단을 받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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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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