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 "내가 니 시다바리가?"
영화 <친구>에 나오는 이 대사는 우리말로도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있다. "내가 니 밥이가?"
이때 '밥'은 하찮은 존재이다. 남에게 눌려 지내거나 이용만 당하는 사람이다. 밥뿐 아니라 밥을 담는 그릇도 싸잡아 비하된다.
'밥통'이란 말은 제 구실 못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인다. 싫어하는 사람을 말할 때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 밥맛이야."
그러나 세상에 밥처럼 소중한 것이 있을까? 또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게 '밥맛'이다. 사실 우리는 '밥통'을 챙기기 위해 일생 동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다.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게 요즘 세태다.
재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이쯤으로 정의되지 않을까. "재벌 '밥맛'이다."
지난 20여년간 대기업을 취재해 온 한겨레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의 신간 '재벌들의 밥그릇'은 재벌들의 밥통 채우는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한다.
중소기업인, 재벌 대기업 구매 담당 간부, 재벌 대기업 총수 등의 고백을 통해 서민의 밥통을 어떻게 빼앗아 재벌 밥그릇을 채우는 지 말이다.
어느 재벌 대기업 구매 담당 간부의 고백 "협력업체의 이익률이 5% 넘으면 추가로 단가 인하에 들어간다. 기본적으로 협력업체의 이익이 많이 나면 구매 담당이 힘들어진다. 부품 구매를 어떻게 했기에 협력업체들의 이익이 많이 나느냐고 위에서 난리를 치기 때문이다"(p26)
그들의 고백이 너무나 리얼해서 일반 독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나쁜 놈'을 외치다 밤 잠을 설칠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비일비재한 대기업의 횡령과 탈세,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오너. 동네골목 상권까지 잠식하는 문어발식 경영, 하도급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누구나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 결국 비난이나 질책을 하자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현실 문제는 선악의 이분법적 접근으로만 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벌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도 이율배반적이긴 마찬가지 아닐까.
실제로 우리 사회는 늘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재벌들의 리그에 속하려 열심히 노력한다.
재벌회사에 입사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길 바라고, 일상생활에서도 재벌이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데 개의치 않는게 현실이다.
주변에 '삼성전자'에 다니는 친구가 해마다 연봉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받을 때마다 '밥맛'이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부러운 남의 밥통만 쳐다볼 뿐이니까.
저자의 결론은 사실 재벌만의 밥그릇을 우리 모두의 밥그릇으로 나누자는 거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165조원, 영업이익 16조를 넘어 신기원을 이룬 그들의 밥통을 좀 더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용하자는 말이다.
'이익공유제'처럼 대기업이 연초 수립한 이익 목표를 연말에 초과 달성했을 때 초과이익의 일정 부분을 협력사들에게 나눠주는 제도를 통해서다.
매년 삼성 임직원들이 받는 보너스 잔치를 협력사에게도 나누면 재벌의 이익률 하락폭은 작은 데 반해 협력업체들의 이익률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2009년 초과이익 중에서 1조3000억원 정도를 2010년 초에 직원들에게 배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임직원에게 나눠 준 돈의 절반 정도인 7500억 원만 협력사들에게 배분하면...(p140)
저자는 이런 식으로 '재벌개혁'은 대기업의 자율에 의존하지 말고, 법과 제도적 시스템 구축을 통해 이뤄야 우리 모두의 밥그릇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재벌은 여전히 자기 밥그릇 지키는 데에만 혈안돼 있는 씁쓸한 뉴스가 전해온다.
"동반성장위원회가 1년여에 걸쳐 추진해온 이익공유제가 '협력이익배분제'로 이름을 바꿔 내년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내용도 원안에도 크게 후퇴해, 결국 있으나마나 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2012. 2. 3자 일간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