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섬 후유증에 중소형 증권사만 '한숨'

'트랙 레코드' 편견없이 후했던 외국기업 '굿바이'

입력 : 2012-02-29 오후 2:20:33
[뉴스토마토 김용훈기자] 국내 증시에 상장하려던 외국기업들이 잇따라 상장 일정을 철회함에 따라 외국기업 기업공개(IPO) 주관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중소형 증권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고섬 거래정지로 국내 투자자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후 금융당국이 외국기업에 까다로운 상장 조건을 요구하면서 주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내 증시 상장 계획을 철회하는 외국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내달 27일 공모주 청약을 진행하려고 했던 차이나그린페이퍼패키징이 공모를 철회했다.
 
지난해에도 중국대제국제유한공사, 썬마트홀딩스, 컴바인윌홀딩스, 중국건재설비유한공사, 이비에이치인더스티리 등 5개 중국기업이 상장예비심사 접수를 철회하거나 공모 단계에서 돌연 포기했다.
 
중국 이외에 미국기업 유나이티드머천트서비스와 싱가포르기업 UMS홀딩스도 예심을 철회했고, 일본기업 파워테크놀로지도 공모를 철회했다. 지난해부터 총 9개 기업이 국내 상장을 중도에 백지화한 셈이다.
 
◇중국고섬 후유증? 금융당국 심사강화 
   
      
외국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 취소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지난해 2월 상장 후 한달 여만에 거래가 정지된 중국고섬의 회계부정이 단초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거래소(SGX) 상장사인 중국고섬은 지난해 2월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2차 상장 형태로 입성했지만, 국내 투자자와 상장주관사 대우증권(006800), 한화증권(003530)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한국거래소 국정감사에까지 거론됐다.
 
이로 인해 금융당국의 외국기업 상장심사가 한층 엄격해졌다. 최근에도 금융감독원은 차이나그린페이퍼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면서 3개월 후 나오는 감사보고서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회사 측에 전달했다.
 
앞서 중국고섬이 감사보고서가 나오기 3~4개월 전 상장했고 결국 회계 부실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나그린페이퍼 측은 국내 상장을 연기하는 대신 대만 증시에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고섬 사태 이후 중국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어지면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발행사 측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통상 IPO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책정할 때 국내 기업의 경우 앞서 상장된 동종업체를 비교대상 군으로 두지만, 중국기업의 경우 '차이나 디스카운트'를 고려하게 된다는 것이 국내 IB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차이나그린 상장주관을 맡았던 신한금융투자 해외IPO팀 관계자는 "한국시장에서 매겨지는 주가수익비율(PER)은 홍콩, 대만시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며 "중국기업에 대한 불신감 탓"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기업 IPO 활로 모색했던 중소형사 '한숨'
 
지난해 IPO 주관 순위를 보면, 우리투자증권(11건·9132억원), 한국투자증권(16건·6854억원), 대우증권(8건·5835억원), 미래에셋증권(5건·5819억원), 현대증권(6건·3997억원) 등 대형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들 5개 대형사들의 IPO주관 점유율 비중은 74.34%에 이른다. 이들의 점유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IPO주관 경력'을 의미하는 '트랙 레코드(Track Record)'가 IPO주관사를 선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미래에셋증권이 총 발행금액의 0.01%에 불과한 수수료(2000만원)만 받고 GKL(114090)주관사를 맡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해도 트랙 레코드를 쌓아야 다음번 계약에 유리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험이 적은 중소형사가 '빅딜'을 따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NH투자증권(016420) IB임원은 "경험 많은 우수한 팀원을 영입했지만 증권사 이름의 트랙 레코드가 부족해 일감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들 중소형사들이 눈을 돌린 곳이 중국을 포함한 외국기업이다. 외국기업의 경우 국내 기업 주관 수수료의 2배를 웃도는데다 트랙 레코드에 대한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UMS홀딩스 상장 주관사를 맡았던 KB투자증권 IB임원은 계약 당시 "국내와 달리 외국기업은 KB금융(105560)의 일원인 KB투자증권을 트랙 레코드가 전무한 소형사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상장된 외국기업은 모두 17개로, 앞서 언급한 5개 대형사가 아닌 신한금융투자, 교보증권(030610), IBK투자증권 등이 대표주관사를 맡은 기업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10개(58.82%)에 이른다.
              
 
◇외국기업 잇딴 상장 철회에 인력 유출 가속화
 
문제는 앞으로 외국기업의 국내 상장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는 외국기업 국내 상장 관련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강화방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국내 상장하는 외국기업은 내부회계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외부감사인의 내부회계 관련 검토의견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특히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상장주관사가 외국기업 공모주식의 약 10%를 투자한 뒤 6개월간 보호예수해야 하는 방안이 시행되면 부담은 더욱 무거워진다.
 
이 때문에 해외 IPO를 전문으로 하는 인력들이 벤쳐 캐피탈 전문업체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기업 IPO를 전담하는 해외IPO팀을 보유한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지난해 1명이 이탈한 데 이어 올해에도 2명이 둥지를 옮겼다.
 
팀 인원이 15명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약 20%의 인원이 빠져나간 셈이다. 그중 1명은 퇴사 이유로 중국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용훈 기자
김용훈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