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여성정책을 쏟아냈다. 그만큼 여성정책에 허점이 많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의 15~64세 여성 고용률은 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로 하위권에 위치했다. 주요 선진국들의 여성 고용률이 65% 내외인 것과도 비교된다. 또 한국 여성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여성들 중 사회 경제적 지위가 '바닥'수준이라는 통계도 나오기도 했다. 여성 비정규직의 비율은 남성보다 높고, 임금에 있어서도 낮은 대우를 받고 있는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이다. 현재 한국 여성들의 현 주소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진단하고, 여성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방안도 살펴본다. [편집자주 ]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더운 어려운 실정이다.
일하는 아빠는 당연하지만 아직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집안일은 으레 여자 몫일 수밖에 없다.
직장 내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욕심이 많다'며 손가락질 받고, 육아에 신경쓰면 '대충 시간 때워서 돈 받아 간다'는 핀잔이 돌아온다.
맞벌이 하랴 집안 살림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이 호락호락 하지만은 것이 현실이다.
◇워킹맘에 '슈퍼우먼' 되라고 요구하는 사회
대다수 워킹맘은 힘든 바깥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시 가사와 육아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워킹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일하느라 육아와 아이 교육에 신경쓰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다.
이 때문일까. 자녀양육 컨설팅기관 듀오차일드에 따르면 워킹맘 10명 중 9명이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성들이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훌륭한 내조는 물론 직장생활도 하며 경제적으로도 가계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20대 여성 취업자 수가 20대 남성을 추월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1980년 20대 남성의 고용 비율은 80%였고, 20대 여성은 40% 수준이었다. 미혼 남성들도 배우자가 맞벌이를 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28~34세 미혼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맞벌이를 원했다. 이는 5년 전에 비해 14% 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여성도 당연히 일하는 시대가 됐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에 따르면 워킹맘들은 남편이 고충 몰라줄 때 가장 서럽게 느낀다고 답했다. 또 '퇴근 후 아이까지 돌봐야 할 때', '눈치 보며 퇴근해야 할 때', '회식 빠져야 할 때' 등의 응답도 나왔다.
아이를 키운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주모 씨(45세)는 "전업주부로서 아이를 돌보기만 해도 내 생활을 하기 힘든데 일까지 병행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힘들다"며 "특히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줄 것처럼 했으나 결국 다 내 몫이었다"고 토로했다.
◇현실감 떨어지는 정책..女근로자 80% 출산 탓 퇴사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말 기준 상시 근로자 500인 이상인 직장 어린이집 설치의무 사업장 576곳 중 보육시설이 설치된 곳은 전체의 31.1%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를 떼어 놓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고 육아지원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보육비 지원 등의 정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부모들이 원하는 정책이 아니기 라는 얘기다.
아울러 임신 했을 때 직장 내 불편한 시각과 육아휴직 전후의 경력 단절을 감수해야하는 것도 워킹맘의 몫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 여성 근로자 10명 중 8명이 출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전직했다. 3개월의 출산휴가와 눈치껏 육아휴직 1년을 하고 나면 경력 단절이 뒤따르는 것이다.
홍보 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모 씨(29세)는 "3개월 출산 휴가 조차 눈치가 보여 그나마도 다 못 채우고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고 90일을 쓸 수 있는 남편의 육아휴직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정부가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재택근무를 하는 등의 유연근무제를 독려하고 있지만 선뜻 참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실에 맞는 개선책이 필요하고, 직장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현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육아와 교육 문제를 사회가 일정 부분 떠안거나 남편과의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