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 이대로 좋은가)④증권을 모르는 증권사 CEO

입력 : 2012-04-05 오후 4:01:03
[뉴스토마토 박제언 기자] 국내 자본시장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자본시장법은 2008년 4월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시점을 감안하면 올해로 5살이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는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커지는 등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을 만들며 구상했던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업계의 발전은 정체되고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산업의 현주소와 개선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증권시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업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서 서로의 안부만 묻다가 막상 본회의가 시작되면 입을 닫기도 합니다."
 
한 증권사 사장의 자조섞인 고백이다. 극히 이례적인 경우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사장은 "증권사 사장단 회의 자리는 업계 서열 순서에 따라 정해지는데, 중소형업체 사장은 아무리 경력이 많고 전문성이 있더라도 맨 끝자리에 배치된다"며 "중앙 자리를 차지한 사장들을 중심으로 업계 현안과 관계없는 얘기만 오가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허탈해진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서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와 같은 대형 금융투자회사(IB)가 빠른 시간 내에서 나오기 힘든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로 증권업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된 CEO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업을 모르는 사람이 증권사 사장이 되면 하나부터 열까지 업무파악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만 해도 만만치 않다"며 "어렵게 업무파악을 하더라도 임기가 연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모든 게 원점으로 되돌아가곤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소위 낙하산 CEO가 오게 되면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돼 경영전반에 악영향을 준다"며 "임기가 끝나면 떠나야 할 사람 입장에서는 해당 증권사의 발전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할 리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소속 증권사 중에는 계열사에서 가장 우수한 실적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CEO로 선임하고, 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하려 하기도 한다. 정부 정책에 신속하게 대응해 업계에서 앞서나가자는 의도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해 문제가 되곤 한다.
 
A 증권사 전 사장은 정통 관료 출신으로 취임하자마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여파로 증시가 급락하면서 경영위기에 직면했지만 공직생활을 하면서 쌓은 인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무난하게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부의 평가는 냉혹하다. 사장 재임기간 중 시장점유율 3~4위권을 유지하던 A증권사의 업계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는 후문이다. A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의 경영실패를 거론하며 책임론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지주 소속 증권사의 경우 CEO 자리는 '몸보신'용 자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금융지주 내에서 요직은 주로 은행출신들이 앉기 때문이다. 증권사로 밀려난 은행출신 CEO들이 증권을 이해하지 못해 정통 증권맨들과 때로는 충돌을 빚기도 한다. '사고만 치지 않고' 한 자리 지키기 위해 은행에서의 업무를 답습해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은행장 출신의 B증권사 전 사장 역시 대내외 평가가 좋지 못하다.
 
B증권사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사는 일하는 업무나 스타일이 굉장히 다르다”며 “하지만 은행장 출신 CEO들은 그런 부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밑바닥부터 일해본 CEO들은 직원들에게 어떤 일에 대해 요구를 하거나 독촉할 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요령을 알지만 증권업을 모르는 CEO들은 무작정 요구하기 때문에 직원들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 증권사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당시 은행장 출신 CEO가 리먼브러더스에 1000억원 가까이 투자한 탓이다. 은행과 증권의 IB를 동일선상에서 판단해 감행한 투자였지만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이후 이 증권사 IB부문은 위축됐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C증권사 사장은 건설사 출신으로 시작해 증권사의 경우 1997년 법인영업본부장이라는 임원직부터 시작했다. 2010년 증권사 CEO로서는 첫 명함을 박았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는 학벌과 친인척 관계로만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혹은 증권사 명맥만 유지키 위해 업계에서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D증권사는 학교법인 재단 소유다. 이 때문에 주요 임직원들이 해당 학교법인 출신으로 채워지는 이른바 '로열 패밀리'로 구성됐다. 사장 역시 해당 학교법인 출신으로 회계사로 활약하다 D증권사 감사를 맡고 사장으로 승진했다.
 
E증권사는 과거 '삼성보다 돈이 많았다고' 소문이 났을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명예회장이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눠줄 때 E증권사가 그 중 하나였다. E증권사 회장은 명예회장의 자식으로 E증권사에서 30년여년간 몸담고 있다. 하지만 특별하게 공격적인 증권업계 행보를 나타내진 않는다. 가족 회사라 현상태만 유지하자는 전략(?)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E증권사 사장은 공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사장은 증권업계 출신이 맡는 것이 맞다”며 “증권업계 출신이 아니면 증권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 자체의 감각이 떨어지고 증권 정책 부분에서 무조건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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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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