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대통령이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일까. 정치권에서는 이미 레임덕이라지만 정부부처에서는 아직 대통령의 말이 기가막히게 먹혀들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팥으로 메주라도 쑬 태세다.
정부가 19일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5개 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유가안정 대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 급등이 정유업계의 과점 때문인지를 알아보라고 지시한지 불과 1주일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 튀어나온 대책이었다.
게다가 '4월19일'에 발표한다기에 무슨 ‘혁명’적인 내용이라도 담겨있을까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겉은 혁명적이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끌어들여 SK·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오일 등 다른 4대 대기업 정유사들이 과점하고 있는 국내 석유시장을 흔들어 놓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니 시장을 흔들기는커녕 국민 세금을 투입해 삼성이 석유시장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을 수 있도록 환경만 만들어줬다.
정부는 소비자가 리터당 30~40원의 인하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그정도 효과는 국제유가가 조금만 올라도 상쇄되버리는 규모다. 유류세를 인하해 봐야 고유가시대에는 티가 나질 않는다던 정부가 고작 이정도로 생색내기에는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대책의 내용도 억지스럽다.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프타를 들여와 화학제품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질이 낮은 휘발유를 아주 조금 생산하고 있는 삼성토탈에게 4대 정유사의 과점을 좀 흔들어 달라고 하기에는 초등학생이 봐도 '무리수'다.
삼성토탈이 당장 주유소를 설립한다거나 정유사업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대도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삼성토탈의 참여로 기존 4개사의 독점체제가 깨져 가격인하가 유도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모한 자신감인지, 장관 자질이 없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날 정부의 대책은 지난해 1월과도 묘하게 겹친다. 당시 설 명절을 앞두고 "정책현장을 찾으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외교부장관이 자신의 정책과 무관한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 “기름 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말로 출발한 석유가격TF가 1년이 넘게 활동했지만, 기름값은 오르기만 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마치 '주크박스'처럼 설익은 대책을 '툭' 내놓은 5개 부처 수장들이 과연 석유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