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에 신음하는 식자재상권..중기청은 '뒷짐만'

입력 : 2012-05-04 오후 6:05:14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종합식품 대기업인 대상(001680)이 식자재 도소매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간판 바꾸기도 모자라 '개인사업자'로 위장하는 방식 등으로 전국 식자재 유통시장에 200~300평 규모의 대형마트를 속속 개점시키고 있다.
 
이에 대항해 그동안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대기업의 지역시장 진입을 차단해왔던 중소기업청도 ‘개인사업자'를 내세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제지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손을 놓고 있다.
 
전체사업자의 90% 이상이 영세소상공인으로 이뤄져 있는 식자재 도매상권을 보호할 것으로 한 때 기대를 모았던 중기청의 사업조정제도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중기청이 상생법에 근거한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최종적으로 거대자본의 도매상권 침투에 대해 강제이행명령이나 범칙금 부과까지 내릴 수 있지만 외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 도매시장 침투 '점입가경'..지역 상인과 합의도 무시
 
4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대상이 부산, 대구,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개인사업자 명의의 초대형 식자재마트 개점을 준비하면서 지역 상인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대상은 지난 달 대구에서 식자재마트인 ‘배추벌레’ 등을 인수해 지역에 진출한 상태다. 일단은 지역업체 명의로 개점한 후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대상베스트코’로 명의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현재 대구에서 칠성점, 대구점, 대명점, 성서점 4곳을 운영하고 있다.
 
또 인천에서는 대형 식자재마트 '달인식자재'가 중기청의 영업정지 공고를 무시하고 본격적인 영업에 돌입했으며, 부산에서도 최근 사하구 인근에 공사 중인 식자재마트가 변종 SSM(기업형 슈퍼마켓)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상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인근 지역상인들의 반발에 아랑곳 않고 오픈한 대형 식자재마트들도 ‘주요 판매품목 50여종에 한해 시장가격을 유지한다’는 당초 지역상인회와의 약속과 달리 20~30% 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헐값 세일'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판매가격이 사실상 납품 원가를 밑돌아 지역 상권 내에서의 '출혈 경쟁'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인천시 상삼동 인근의 한 식자재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과도하게 가격을 낮추는 목적은 단순히 주변 개인사업자들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며 "대기업은 원가에 못미치는 가격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는 얼마 못버티고 폐업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중기청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지역에 영업 중인 대형마트가 개인사업자인지, 대기업 계열사의 자본인지를 판명할 계획이지만, 이마저 ‘시간 끌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조경태 의원은 2일 열린 중기청 및 지역상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대형마트의 소유주가 100% 개인사업자라면 나중에 다시 법을 개정해야한다"며 "200~300평 규모의 마트는 개인사업자라고 해도 진출을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유통업계에서도 "중요한건 대기업, 중소기업이 아니라, 지역시장에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포식자가 나타난 것"이라는 반응이다.
 
업계에 따르면 200~300평 규모의 식자재 마트를 설립하려면 최소 30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되는데, 이를 개인사업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소상공인 보호해야할 중기청, ‘있는’ 권한도 안쓴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세소상공인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야 할 중기청은 오히려 "권한이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세다.
 
중기청 관계자는  "일부 대형마트에게 개점하지 말 것을 요청했지만 관련 서류를 구비해 개인사업자라는 걸 증명하고 개점을 강행했다"며 "중기청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중기청의 사업조정 일시정지 처분 또한 행정 처분이 아니라 사실상 단순 권고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들은 “상생법을 보면 중기청이 기업조정심의위원회를 통해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만약 사업자가 사업조정심의위원회 권고사항을 위반할 경우 다시 강제이행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마저 어기게 되면 범칙금을 부과하도록 돼있다는 설명이다.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실장은 “중기청이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보호에 나서야 할 상황에서 있는 권한도 오히려 없다고 하니 당혹스럽다”며 “법적 권한에 대한 중기청 설명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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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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