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10일, 재계는 종일 들썩였다. 내로라하는 국내 56개 대기업이 동반성장위원회로부터 ‘성적표’를 받아든 날이다. 희비는 성적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이날 발표된 동반성장지수는 우수, 양호, 보통, 개선 등 4개 순으로 분류됐다. 9개 계열사가 평가 대상에 오른 삼성은
삼성전자(005930),
삼성전기(009150),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 주력 3사가 최고 등급인 ‘우수’ 판정을 받았다. 최고 등급을 받은 6개 기업 중 절반이다.
삼성SDI(006400) 등 4개사는 그 다음인 '양호' 등급을 받았고, 나머지 2개사도 '보통'을 받았다. 평가 대상이 된 그룹사들 가운데 가장 우월한 성적표다.
삼성은 그럼에도 “앞으로 갈 길이 멀다”며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개선’으로 최하위 낙인이 찍힌 여타 기업들에게는 얄미운 표정관리로 비쳐졌다.
◇"함께 가자"..'나홀로' 아닌 '동반성장'
삼성은 상생, 동반성장 등의 시대요구가 화두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를 준비해왔다. 물적 토대 없는 나홀로 성장이 가져올 부담을 직시한데다, 협력사의 기술 혁신 없이는 완제품의 질적 완성을 추구할 수 없다는 전략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
삼성전자는 첫 단계로 2010년 8월 상생경영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이듬해엔 그룹이 나서 공정거래·동반성장 협약을 맺고, 상생을 경영의 지침으로 삼았다. 2012년 현재, 협약에 참여한 1, 2차 협력사만 4539개사에 달한다. 사실상 삼성의 모든 협력사가 동반성장 협약의 틀로 들어온 것이다.
삼성의 노력은 협력사들의 애로사항 해결에 집중됐다. 원화가치 하락에다 고유가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 협력사들의 고충이 커지자 원자재가 변동분을 부품 단가에 반영하는 사급제도를 도입했다.
2010년 9월엔 기업은행과 함께 1, 2차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지원펀드를 조성, 5년간 운영 실시키로 했다. 대출 금리 감면 혜택에 더해 올 7월부터는 개별 협력사 신용도에 상관없이 1.4%의 금리를 추가 인하할 방침이다.
특히 2차 협력사에 대한 종합 지원책을 마련하고 상대적 취약성을 보강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기술력과 공급력 등 일정 자격요건만 갖추면 직거래를 트고, 현금결제를 2차 협력사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금 유동성이 확보되고 거래 기반이 안정화되면서 견실함은 더해졌다.
우수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한 best company 제도도 도입했다. 공동 기술 개발, 경영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인적·물적 지원을 통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다. 30여개 기업이 선발됐으며, 향후 2015년까지 5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신기술 개발 공모제는 대표적인 연구개발(R&D) 지원책이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개발기금 1000억원을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공모를 통해 협력사 4개사를 선발했다. 선정된 기업들은 공동 기술 개발비의 70%내에서 최대 10억원까지 무상으로 지원받는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협력사들을 위해 숙련된 전문 인력의 수급을 지원하는 방안도 시행 중에 있다. 뿐만 아니다. 협력사가 아님에도 역량 있는 중소기업에겐 문호를 확대해 거래 다변화의 길을 터줬다. 임시등록제, open 소싱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요구엔 한발 앞선 '응답'
재벌가 빵집이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이자 삼성은 커피·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를 전격 철수했다. 아티제는
호텔신라(008770)의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 중에 있었다.
아티제는 여타 문제가 된 경우와 달리 오너 일가의 지분이 전무했고, 특히 대부분의 매장이 삼성 계열사 건물 내에 위치해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도 삼성은 즉각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결단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내렸다. 해명을 앞세우기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자세를 보이기 위함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딸로서 받은 여론의 압박감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라호텔이 1월 철수를 선언한 데 이어 4월 아티제 지분 100%를 대한제분에 매각하며 절차를 마무리 짓자 업계는 그 신속함에 놀랐다. 이는 실제 문제가 된 다른 재벌가의 빵집 철수로 이어졌다. 여론의 눈치를 보다 삼성의 빠른 대응에 당황한 것이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10월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 철수를 결정하고,
인터파크(035080)에 삼성전자 등 9개 계열사가 보유한
아이마켓코리아(122900) 지분 58.7%를 매각했다. 대기업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지체 없이 결단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데 삼성이 주도적으로 결정했다. 업계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고마울 정도”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비판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본질적 문제”라며 삼성의 결정을 반겼다.
삼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윤 추구만을 생각하면 이런 결단은 나올 수 없다”며 “재벌이 아닌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으로 자리하고 싶은 삼성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관성·관용 없다"..준법경영으로 내부 다잡기
삼성의 또 다른 화두는 ‘준법경영’이다. 이 회장이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연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과거 잘못을 씻는 차원도 있지만, 스스로 법치의 토대 위에 설 때 정치권력 등 여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단이 짙게 배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지난해 4월 12개 주요 계열사가 참여해 준법경영 선포식을 갖고, 이를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알렸다. 그룹내 모든 위법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담합 등 불공정 행위 척결을 다짐했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과 함께 그룹내 투톱으로 불리는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불공정 거래행위, 환경안전 미준수 등은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고객의 신뢰까지 잃게 된다”며 “경우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즉각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을 마련하고 각 사별로 준법경영 기반을 구축했다. 삼성은 이와 함께 담합 근절 대책에도 힘을 쏟았다.
삼성은 자체 준법경영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담합 근절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여전히 일부 발주처에서 미팅 등을 통해 경쟁사와 불가피한 접촉이 이뤄지는 등 담합의 위험요소가 잔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책 세부내용에는 상시적 모니터링 및 현장점검, 담합 행위자 징계 등을 통한 ‘제도적 장치 강화’, 대상별 맞춤 교육, 회사의 준법의지 지속 천명 등을 통한 ‘임직원 의식개혁’, 그리고 담합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사업 프로세스 재정립’ 등이 담겨 있었다.
김순택 실장은 지난 1월 사장단 회의에서 “담합은 명백한 해사 행위”라며 “사장 책임이라 생각하고, 담합 근절을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달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삼성이 경제민주화로 대변되는 재벌개혁에 일정 부분 화답하고, 규모에 맞는 사회 기여로 나아가지 못하면 지금껏 쌓아올린 탑은 일순간 무너질 수도 있다.
삼성의 적은 언제나 그랬듯 내부에 있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유착의 달콤함을 벗지 못하고 관성을 탈피하지 못한다면 삼성을 향한 국민의 이중적 시선은 한층 더 고착화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