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통합진보당 사태 추이에 재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5단체과 주요 재벌그룹들의 표정에서는 일단 안도와 기대감이 느껴진다. 19대 국회 의석 13석의 원내 3당으로서 가장 강한 목소리로 재벌개혁을 부르짖던 통합진보당이 사실상 '자멸'의 모습을 보이며, 그들 주장이 명분과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재계를 대변하는 주요 경제단체 관계자는 14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며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 수도 없고…”라는 첫 마디부터가 의미심장했다.
관계자는 “통합진보당의 정책과 공약엔 급진적인 게 많았다”며 재벌세 도입과 재벌해체론 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특히 “민주당이 야권연대 때문에 통진당의 주장에 너무 끌려 다녔다”며 “표를 의식한 선전·선동 구호로는 먹혔을 수 있지만 국가경제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주장이 다소 약해지지 않겠느냐”며 “합리적 수준에서 재검토 돼야 한다”고 기대했다.
그룹사들 역시 정치권에 대한 포문으로 인식될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통합진보당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9대 국회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라며 “특히 통진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상당 부분 좌클릭할 것으로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문제는 급진적 좌경화가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경제정책마저 좌편향될 경우 기업 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룹사 관계자는 “국가경제를 이끌어온 주체가 바로 기업”이라며 “누가 누구를 개혁해야 할지 참 말하기 난감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국민적 분노가 쌓여가는 통합진보당의 현 사태를 꼬집는 말이다.
그는 특히 “민주노총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면서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을 지탱해온 노동계의 이탈은 노조-정당으로 이어지는 연대투쟁의 강력한 수단이 와해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현대차, 조선 등 산별 노조가 강한 사업장은 당장 이해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이석기, 김재연 등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 당선자들이 끝내 당의 사퇴 권고를 거부하고 19대 국회에 등원한다 해도 이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식물 의원'이라는 조소마저 제기된 상황이라, 이들이 주장할 재벌개혁의 법제화는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를 눈여겨 본 대기업 관계자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게 됐다”며 “(경제민주화에 동의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태도 변화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실제로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도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을 중심으로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는 물론 정책공조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도 이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을 비롯해 순환출자 전면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금산분리, 계열분리명령제, 횡령·배임 등 기업범죄시 대주주·이사 자격 제한, 연기금 주주권 행사, 내부자 감시 및 노동자 경영참가, 초과이익공유제 및 하도급 이행보증보험 의무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 도입 등을 골간으로 하는 재벌해체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5+4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는 공정시장경제 질서 복원에 초점을 맞춘 새누리당과 달리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어 재계의 긴장이 고조된 요인이었다. 민주당 역시 연대 파트너인 통합진보당과 정책 보조를 맞추느라 경제민주화 기치가 덩달아 높아져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