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급격한 경제정책 기조의 전환-재계의 반발-관료들의 가세와, 포위-그리고 실패….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대한 압축 평가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꺼내든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한국경제의 기형적 성장만을 가져오며 여론의 철퇴를 맞았다. 이후 친서민, 상생 등 정반대의 각종 정책들이 추진됐지만 이내 좌초되고 말았다. 준비되지 않은 탓에 현실과의 조율보다는 싸움으로 일관했고, 이는 정권을 뒷받침했던 보수층의 분열과 이탈을 가져왔다.
재계의 격한 반발에 눈치로 일관하던 모피아(경제관료)가 가세했다. 보수언론도 서서히 거들기 시작했고, 정부는 이내 포위됐다. 의지의 부재는 정책 초기부터 의심받았다. 그렇게 실험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정운찬은 혀를 차며 선봉에서 물러섰다. <뉴스토마토>는 2010년을 기점으로 집권 막바지까지 이어져 온 이명박식 동반성장 정책의 '허와 실'을 세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9월 동반성장 의제를 꺼내들었다. 이전 '비즈니스 프렌들리'와는 정면으로 상반되는 정책기조의 대전환이었다. 대·중소기업 상생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면서 재계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재계는 물론 관료, 학계, 언론 등 모두가 정권의 의도 파악에 혈안이 됐다. 기업마다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재계 요청을 받아들여 출자총액제한제 등 각종 규제를 철폐했지만 '곳간'은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한 역공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변화의 동인은 역시 민심이었다. 직전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민심의 역풍은 거세졌다. 정치적으로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렇게 '동반성장'은 후반기 이명박 정부의 필승카드로 떠올랐다.
그해 9월 상생의 구체적 방안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논란은 이내 잦아들었다. 총 4개 분야, 15개 세부사항으로 구성된 정책 중에 대기업에게 부담되는 내용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 학계와 시민사회 등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손해배상제 도입, 전속고발권 등 시장 지배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실질적 제재 수단이 모두 누락된 채 중소기업에 대한 시혜성 제도만 나열됐다.
진정성에 대한 의심은 사실로 확인됐고, 재계의 불안은 말끔히 씻겨졌다. 전국경제인연합,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도 동반성장 의제의 구체적 추진 방안이 발표되자 돌연 환영 의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MB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에 비춰보면 놀랄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체성' 없는 '실용'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결국 '이해'만이 정책을 지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공정사회추진회의 참석자들과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원칙도 의지도 없는 동반성장, 남은 건 ‘이름’뿐
2010년 9월부터 본격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MB식 동반성장론은 MB정권의 마지막 해인 올해 성과공유 확인제 시행,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동반성장지수 산출 등 굵직한 정책들로 발현됐다.
하지만 동반성장과 관련한 정책들 중 명확한 원칙을 갖고 정교하게 구성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정책 과정에서 원칙의 부재는 구속력의 부재로 이어졌고, 대기업이 독식하는 시장 구조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법적 효력을 가진 제도는 사실상 전무했다.
실제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1014개 회원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기업 75.2%는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이 효과가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의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 평가방식 만족도'는 평균 59.5점(100점 만점 기준) 수준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학계 및 중소기업계 전문가들은 끝내 ‘시장자율’에만 매달린 MB식 동반성장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적 관계 혹은 수평적 관계 설정은 ‘대국민 선언‘ 수준이나, 대기업 독려 수준으로 충분히 달성되지 못하는 만큼 법제도의 개선을 통해 구조화시켜야 하는데, 정책의 법제화에 부담감을 느끼는 재계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중소기업계와 소상인공인들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결제조건 개선, 골목상권 침해에 대한 사후조치, 납품단가 인하요구 등 정책 발표 이후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중대한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 실패가 본질적으로는 '대기업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점은 관련 통계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공정위에 따르면 이명박 정권 이후 35개 대기업집단(그룹)은 그룹별로 매년 평균 2.8곳의 계열사를 늘려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중 22개 그룹의 계열사 74곳은 정부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추진, 동반성장 문화 확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식음료 소매, 수입유통업,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등 중소기업 영위 업종에 진출했다.
◇혈세 부은 정책 실패하니 “동반성장문화 확산시켰다”?
그동안 추진된 주요 정책과 관련해 속속 정부에게 불리한 통계자료들이 제시되고, 구체적인 정책 효과를 입증하기 어려워진 정부는 최근 '동반성장문화의 확산'이라는 그럴듯한 카드를 빼들었다.
동반성장 정책의 진정성이야 어찌됐든 이명박 정권은 최초로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동반성장지수, 적합업종 선정 등을 추진한 정권이라는 ‘실적’이 남는다. 즉 정권 차원에서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시켰다“고 홍보할만한 '스펙'을 쌓은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국 타개를 위해 급조된 정책들의 성적표가 초라할 것이라는 점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동반성장지수는 2년여의 준비 기간이 주어진 것에 비해 불과 56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설정한 점, 점수 산정 방식의 불투명성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업계에 동반성장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삼성전자, 현대차를 위한 인센티브 잔치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의 경우 지난 1월 완료된 실태조사를 5월 들어 재차 시행, 엇비슷한 공청회를 수차례 반복하는 등 ‘시간 때우기’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적합업종이 선언된다고 해도 이 또한 시장자율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기도 어렵다.
지식경제부가 ‘올인’하고 있는 성과공유제는 이미 지난 5년간의 검증 과정에서 ‘실패’로 드러난 제도다. 동반성장의 모범기업으로 부각된 포스코도 지난 2010년 기준 영업이익 5조원의 호황을 누리면서도 원가절감에 기여한 137개 협력업체들에게 내놓은 금액은 77억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아직 정책효과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제도를 정당한 협의 절차 없이 무작정 밀어붙이는 이유는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이 주장한 초과이익공유제에 강력히 반발하던 대기업, 전국경제인연합 등 기업계가 성과공유제에 대해 ‘OK' 사인을 보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서 진정성은 눈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는 건 정책 내용을 보면 확연하다”며 “대중소기업간 거래가 구조적으로 대기업에게 유리한 시장에서 구조개혁이 결여된 정책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익공유제와 성과공유제 논쟁을 거듭하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커진 건 긍정적이었지만 명분 싸움으로 1년을 허비했고 사실상 실익도 적었다”며 “반면 정권과는 별개로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에서 관련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응을 나타낸 부분을 긍정적인 추진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