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반발 본격화..'경제민주화' 최대쟁점 부상

입력 : 2012-06-04 오후 6:57:37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재계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반발은 정치권과의 힘겨루기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4.11총선을 직후로 각종 조사결과를 내놓으며 경제민주화의 문제점을 짚는데 힘을 썼다. 특히 야권이 주력하고 있는 재벌개혁의 폐해에 대해 주력했다.
 
'규제강화=투자위축'이란 기존 논리에서 진척되지 못했지만 공세 수위는 예전보다 높았다. 보수 학자들도 가세, 여론몰이에 힘을 보탰다. 현 단계에서 제어하지 못할 경우 법제화는 물론, 연말 대선 정국을 거치며 통제 불가능한 시대요구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경련의 브레인을 맡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은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2012 대한민국에의 시사점'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이내 거친 논쟁의 자리로 비화됐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경제민주화는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구체적인 정책 단계로 접어든만큼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법적, 철학적 접근 등 다각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며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기업은 물론 국민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헌법119조 제1항과 제2항의 관계는 '원칙'과 '보완'의 관계고, 제2항 '경제민주화'를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만능규범처럼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도 시장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역할의 한계를 규정지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 연구원은 특히 119조2항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시장경제 앞에 '사회'라는 말을 붙이면 그 의미가 부드러워지지만, 잘못 활용하면 사회정책으로 적용이 확대된다"며 "경제와 사회정책을 개념적으로 분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도급법의 예를 들며 국가가 중소기업이라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에 깊숙이 관여해 오히려 계약관계가 훼손,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고자 한다면 목적과 수단의 적합성 등을 따져가며 법치국가의 원리에 의거해 개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민주화를 무비판으로 수용하는 '습관'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우리사회는 권위주의와 독재정치를 거치면서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성스러운 언어가 됐다"며 "경제적 자유를 축소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언어사용"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정치권력에 의한 '연대와 이타심'만 강조한 '경제민주화'를 국가운영의 원리로 삼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경제민주화 강화를 주문하는 학계와 시민단체는 시민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처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재벌 개혁과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기득권 지키로 비춰질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재벌들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결과는 계열사 늘리기와 편법 상속의 반복으로 인한 국내 산업 조직의 파괴였다"며 "서민들이 대기업이나 재벌 그룹에 대해 피해를 몸소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등을 거론하는 것은 관념론적인 주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시장에서 민주적 질서를 교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선진국에서도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민들이 재계에 왜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지 비판의 관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도 "헌법 등의 경제조항을 따질 때가 아니라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경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다는 데이터까지 나온 마당에 경제민주화를 정면 반박하고 나온 것은 재벌 개혁 공약과 관련 법안들을 견제하기 위한 제스쳐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권 팀장은 재벌로 쏠려 있는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자는 요구가 큰 만큼 경제민주화에 대한 재계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종일 KDI 교수 역시 "경제민주화는 시장 기능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균형있는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헌법 정신에 따라 적절한 규제를 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시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입하는 것을 두고 재계가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은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자 필요한 개혁에 대해 저항하려는 움직임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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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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