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개미의 분노.."이게 다 강만수 때문"

입력 : 2008-10-29 오후 1:55:00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중고차 날린 줄 알았더니 신차 날렸어."
 
S전자에 근무하는 선배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내뱉은 말이다. 최근의 폭락장에서 허우적대며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했더니, 시장이 밑도 끝도 없이 더 '먹였다'는 얘기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지난 17일까지 그가 주식으로 입은 손실은 무려 1200만원.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손실은 15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일주일 만에 그가 보유한 주식 가치에서 300만원이 더 빠진 것이다.
 
증시가 워낙 '다이내믹'하게 빠지다보니 손절매할 타이밍도 잡지 못했다. '이제는 바닥을 쳤겠거니'하며 내일을 기약해봤지만 '패닉', '연중 최저' 등 증시 폭락을 알리는 우울한 소식만이 귓전을 때렸을 뿐이다.
 
그는 "며칠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냥 내 손자한테 물려줄 주식이라 생각하고 묻어두기로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S은행 지방 지점에 근무하는 또 다른 선배의 사연은 더 딱하다.
 
그는 증시 폭락으로 투자액 대비 30% 가량 손실을 입었다. 문제는 액수다. 무려 5000만원. 입이 떡 벌어졌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주는 은행을 햇수로 4년째 다니고 있으니 꼭 필요한 돈만 쓰고 차곡차곡 투자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다.
 
그는 주식도 빠졌지만 무엇보다 주식형펀드에서 큰 손실을 봤다고 했다. 그는 "요 며칠간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며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증시가 폭탄을 맞으면서 개미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빨리 증시가 반등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다.
 
그러나 증시 폭탄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개미들도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책임'을 따질 때다. 그 순간만큼은 풀 죽어 있던 더듬이에 약이 바짝 오른다.
 
그들은 "이게 다 강만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농반진반'으로 꺼낸 말이었다. 다들 이번 금융위기가 미국 시장에서 촉발됐다는 것을, 그리고 정부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개입돼 있음을 잘 알고 있던 터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눠가진 두 개미들은 어느새 모든 화살을 한 사람에게 돌리고 있었다. "당장 물러나야 된다",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등등.
 
결론은 한 곳에 모아졌다.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웃자고 꺼낸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분위기다.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좌절과 분노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순간 한 때 유행하던 우스개가 떠올랐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철 지난 개그다. 도로에서 차가 막혀도, 날씨가 추워 보일러가 터져도 '노무현'을 입에 올렸던 그 개그 말이다.
 
'노무현 때문'과 '강만수 때문'은 같지만 다르다. 둘 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는 점은 같다. 하지만 그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따져보면 여전히 아리송하다. 
 
당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 전 대통령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던 국민들은 '차라리'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듯한 '말장난'을 즐겼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때문' 개그가 '진(眞)'보다는 '농(弄)'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진다. 개미들의 '강만수 때문' 발언은 농담일까 진담일까. 아니면 개그일까 푸념일까.  
 
최근 한 경제매체가 강만수 장관 퇴진 여부를 묻는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시장은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해야 한다고 말한 지 오래다. 반토막난 주식을 손에 쥔 개미들도 본전치기라도 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운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개미들은 어리석지 않다. 
 
다만 지금 시장에 필요한 건 신뢰고, 신뢰 회복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기본'에 충실할 따름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과연 개미들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까. 북한산 끝자락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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