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비상경영 전환에 中企 ‘질식’

“대기업이 졸라매는 '허리띠', 중기엔 '목줄'"

입력 : 2012-06-29 오후 3:27:13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28일 롯데그룹이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전격 선언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에 글로벌 시장마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롯데백화점 평촌점으로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모았다. 신 회장은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불확실한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도박”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그러면서 “하반기에는 어떤 상황이 닥칠지 예상할 수 없는 만큼 방심하지 말고 가장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투자와 관련해 그는 “잘못된 판단일 경우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전략도 함께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롯데그룹은 이에 따라 전 계열사에 비상경영 시스템을 가동하는 한편, 구체적 실행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원가를 비롯한 비용 절감 방안이 최우선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인력을 줄이는 대신 원가 절감에 주력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투자 또한 전면 보류될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는 그간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해외는 물론 국내만 하더라도 두산주류BG, AK글로벌, 바이더웨이, GS스퀘어, GS마트, CS유통, 그랜드백화점 등 소비·유통 분야 매물을 쓸어 담다시피 했다.
 
문제는 자산규모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가 긴축경영에 돌입하면서 협력업체 등 중소기업계에 엄청난 충격파가 던져진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이 상위 그룹사 등 재계 전체로 확산될 경우 산업계 전반이 질식 상태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원가절감 얘기만 들어도 한숨이 나온다”며 “대기업은 허리띠를 졸라 맨다지만 우리한테는 그 허리띠가 '목줄'이 돼 질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의 말처럼 대기업이 주창하는 '원가 절감'의 고통은 주로 중소기업에 전가돼왔다.
 
중소 협력업체 입장에서 보자면 정부의 고환율 정책 탓에 원자재 가격은 급등했지만, 이런 상황이 대기업과의 거래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성행했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을 토대로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다시 위기가 닥치자 대기업들이 앞다퉈 '원가 절감' 카드를 꺼내드는 형국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상경영체제 이면엔 불황에 대한 부담을 하청업체들에게 전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서 “결국 대기업들의 체제 전환으로 대·중소기업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보다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비상시마다 대기업이 내놓는 해법은 항상 원가 절감과 투자 보류, 이 두 가지였다”면서 “마치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하청 업체들을 비틀어왔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그러면서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확장에 따른 위험부담을 결국은 관계 중소기업이 짊어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강자의 논리'에 따라 이 같은 기형적 구조가 장기화될 경우 결국 대기업들이 해외업체에게 납품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는  대기업의 경영 효율성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국내 중소 하청업체들에게 가혹한 원가 절감을 요구하는 대신 대기업 내부 비용 절감 등의 노력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마디로 쥐어짤 곳을 제대로 짚고 쥐어짜라는 얘기다.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대기업들이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있다”면서 “비상경영체제와 같은 단기적 관점에서 해답을 찾을 게 아니라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여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버텨주지 않을 경우 하위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하위구조는 경제 근간을 이루고 있는 민생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삼성과 현대차, LG, SK 등 다른 그룹사들은 아직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중소협력업체, 즉 '민생'의 버팀목이 되어줄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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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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