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권태로운 부부의 아찔한 이중생활

'연극열전4' 세번째 작품 <러버>

입력 : 2012-07-04 오후 12:47:04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극장에 들어서면 이중구조로 된 무대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선 눈에 띄는, 소파와 테이블 따위가 놓인 사각형 무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거실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방 벽면을 대신해 공중에 삐딱하게 매달린 거대한 철제 구조물 탓에 공간은 전체적으로 낯설게 느껴진다.
 
익숙한 거실공간과 감옥창살을 닮은 구조물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묘한 불협화음을 내며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무대디자이너 정승호가 만든 무대구조에는 이처럼 '내면의 생각과 외면의 표현방식이 다른' 헤롤드 핀터 희곡 속 부조리한 인물들로부터 받은 영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노벨문학상 작가인 헤롤드 핀터의 작품 <러버(The Lover)>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10년차 부부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역할놀이를 시작한다. "당신 애인, 오늘 오나?"라고 묻는 리처드와 "오후 세시에 온다."고 대답하는 사라. 부부의 기묘한 대화가 긴장감의 근원이다. 오후 3시, 사라는 평소와는 다른 짧은 드레스와 화려한 구두로 차려입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벨을 누르고 들어온 남자는 다름 아닌 남편이다. 사라는 남자를 '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파격적인 정사를 즐긴다. 간단한 줄거리 속에 핀터 특유의 모호한 언어 사용, 침묵, 사이, 생략 등이 70분 내내 극을 섬세하게 조율한다.
 
이들 부부의 역할극은 놀이이지만 정교하게 진행된다. 사라가 퇴근 후 돌아온 리처드에게 "애인이 와 있는 동안 블라인드를 치고 있었다"고 설명하자, 리처드는 "블라인드를 치면 지나치게 어둡고 더웠을 것"이라며 논리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끊임 없이 역할놀이의 논리 만들기에 집착하는 리처드의 모습은 그만큼 이들의 관계가 위태롭고, 또 권태롭다는 것을 방증한다. 360도로 회전하는 사각형의 무대는 침실과 거실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 역할놀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도 효과적으로 암시한다.
 
 
 
 
 
 
 
 
 
 
 
 
 
 
 
 
 
 
 
 
 
 
 
  ▲ 역할놀이 중 봉고를 즐기는 리처드(송영창)와 사라(이승비). 연극열전 제공.
 
장르상 부조리극 계통에 속하는 이 희곡은 핀터의 희곡 중 드물게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사회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의 갈등을 섹슈얼리티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70년대부터 <티타임의 정사>라는 제목으로 극단 실험극장과 민중극장의 레퍼토리로서 여러차례 상연된 바 있다.
 
연출 오경택은 "남녀간의 이야기, 자극성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대변되는 사람 간 관계,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준비했다"고 설명한다. 배우 송영창과 이승비의 열연 덕에 작품은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예술성과 에로티시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다.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던 배우 이승비가 출연을 위해 홀연히 귀국을 결심했을 만큼 이해와 소통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는 사라의 모습은 매혹적이다.  
  
헤롤드 핀터 작, 오경택 연출, 송영창, 이승비, 김호진 출연, 8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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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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