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너무 무겁지 않은, 연애에 대한 어떤 사색

상상만발극장의 '연애사색극' <영원한 너>

입력 : 2012-07-09 오후 3:18:4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연애사색극'이라는 센티멘털한 수식어가 붙은 연극 <영원한 너>에서 가장 중요한 소도구를 하나 꼽자면 아마도 분필일 것이다. 무른 재질에 창백한 빛깔을 띄는 분필처럼 허약한 그 시절의 기억을, 1시간 반 가량의 시간 동안 배우들은 무대 위에 쉴 새 없이 그렸다가 지운다.
 
무대 바닥에는 여러 개의 하얀 선들이 가로로 길게, 서로 평행하게 그려져 있다. 시작과 끝 지점이 다르고 길이마저 제각각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하얀 분필로 또 다시 선을 긋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써 그린 선을 지우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선 위에 서서 꽃잎을 잘게 찢어 뿌리고, 또 다른 이는 꽃잎과 나비를 그리기도 한다.
 
무대 위 모든 것이 20대의 뜨거웠던 연애에 대한 상징적 기억이다. 애잔하다. 하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싫지 않다. 20대의 연애가 지금의 나에게 그러하듯 극은 과거 시점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연애를 그저 담담히 사색한다. 작가의 독특한 시적언어가 관객을 사색을 유도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집을 들여다 보듯 관객은 너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언어에 기대 무대를 바라본다. 그리고 '가볍게, 투명하게, 바람이 된다.'
 
그러다 뜻 밖의 장면이 가슴 속에 날아와 박힌다. 낯익은 기억이 잊고 있던 감성을 자극한다. 세상의 모든 연애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꽤나 닮은꼴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낯선 시어같은 대사들은 때때로 날카롭게 기억의 속살을 파고드는데, 이때 배우들의 일상적 몸짓이 그 촉매제 역할을 한다. 자전거 타기, 가위바위보, 리모콘 만지작거리기 등의 사소한 움직임이 너무 먼 그에 대한 기억을 잠시잠깐이나마 호출하도록 돕는다.
 
'너의 영원한 너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 먼 그가 될 수 밖에 없는 걸까.' '냄새가 싫어졌다'는 이유로 헤어지는 극중 어느 연인의 모습처럼 결국 나는 '영원한 나'로, 너는 '영원한 너'로 남는다. 어찌보면 결론은 짐작 가능한 것이나, 촘촘히 짜여져 있는 사색의 힘으로 뻔한 연애극의 함정을 비켜간다. 번잡하지 않은 무대는 사색을 위한 좋은 터다. 바닥의 하얀 선과 창틀 모양의 벤치는 너무나 허약해서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다.
 
1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 정영훈, 연출 박해성, 출연 성여진, 신안진, 김신록, 김훈만, 양명선, 강기둥. 무대•조명 김형연, 음향 윤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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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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