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소수가 특권을 갖고 시장을 독점하고 좌우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 누구나 경제주체로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는 것”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다.
안 원장이 19일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날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를 통해서다.
그는 먼저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안 원장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선 출발선, 과정, 재도전에서 공정과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면서 “특히 우리사회의 정의 문제는 경제민주화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기존의 성장과 분배, 이분법적 패러다임을 거부했다. 성장과 복지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닌,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유기적 관계라는 설명이다. 핵심에는 ‘일자리’가 자리했다.
그는 “복지는 단순히 있는 것을 나눠 갖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복지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선순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대 상황과 현실 여건에 맞춰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전략적으로 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복지국가 모델도 드러냈다. 안 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스웨덴 등은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북유럽식 모델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
안 원장은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생각을 펼쳐냈다.
그는 “경제수준으로 따지면 옛날보다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데, 양극화로 인해 상대적 빈곤감이 더 심해졌다”면서 “재벌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노동자, 농민 등 상대적 약자들이 희망을 갖기 힘든 경제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재벌 확장과 그에 따른 시장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대기업의 특혜를 폐지하고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는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기득권의 반발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극단적 방법은 피했다. 안 원장은 “재벌 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내부거래 및 편법상속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 단점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면서 “재벌 외부와 내부,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은 ‘외부적 접근’에 대해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와 같은 불공정거래, 편법상속과 증여, 중소기업의 기술과 인력 빼가기 등 위법행위를 철저히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 강화”를 주문했다. “징벌적배상제, 내부고발자 보호 및 포상 등”이 대안으로 고려됐다.
또 “재벌기업들이 독점과 담합 등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에 대해 철저히 보상하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재벌기업이 입증 책임이나 정보공개 의무 등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재벌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범죄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엄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즉 법과 제도, 그리고 철저한 집행이라는 외부적 접근을 통해 재벌개혁에 다가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내부적 접근’에 대해서는 “지나친 주주 중심주의에서 이해 관계자 중심주의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해 관계자 중심주의는 주주뿐만 아니라 국가, 노동자, 소비자,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함께 극대화해 나가는 방안이다.
안 원장은 이를 위해 “이사회 구성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 역할이 구분돼야 한다. 경영자에 대한 보상과 감시가 제대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정부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자 역할과 더불어 이들 이해 관계자의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기업이 일방적으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치우지지 않고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균형 있게 반영할 수 있는 내부체제를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다만 일각의 극단적 ‘재벌 해체’ 주장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근본적인 접근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점진적인 변화가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대신 순환출자 금지와 금산분리 강화 등 야권이 내놓은 정책 방향에 대해선 동의를 표했다.
그는 “가공 자본을 만드는 순환출자를 없애는 방향이 맞다”면서 “유예기간을 주되 단호하게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금산 분리 관련해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선의를 그냥 믿기는 어렵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게 놔두면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정권에 따라 없앴다 부활했다 하는데,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 말고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편 안 원장은 책을 통해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고민의 연속은 아직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총선이 예상치 않게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열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특히 대선 출마 등 향후 행보 관련해 “앞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역할을 감당하든 아니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계속하든, 책에 담긴 생각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가고 싶다”고 희망했다.
276쪽 분량으로 구성된 책은 안 원장과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대담하는 형식으로 구성됐으며, 안 원장 개인의 삶은 물론 정치·사회·경제 현안과 남북문제 등을 두루 조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