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판매, 기름값 인하 첨병?.."유류세 등 해결과제 많아"

첨예한 이해 대립..결국 소비자만 봉?

입력 : 2012-08-03 오후 11:10:31
[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국내 기름값은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3일 현재 서울 평균 휘발유값은 또 다시 2000원대에 재진입했다.
 
지식경제부는 치솟는 국내 기름값 안정을 위해 지난 1일 '석유제품 복수상표 자율판매(혼합판매)'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지경부의 혼합판매 정책에 따르면 특정 정유사의 입간판(폴)을 단 주유소라도 정유사와 주유소 간 계약에 따라 여러 정유소의 휘발유를 섞어 팔 수 있게 됐다.
  
◇정유사 반발에 부딪혔던 혼합판매.. 4년만에 결실?
 
이번 시행방안은 지난 2008년부터 끊임없이 내걸었던 혼합판매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혼합판매를 표시할 경우에 한해 폴 주유소에서 혼합판매가 가능하도록 의결했다. 사실상의 첫 혼합판매 정책이다. 그러나 공급사들의 '전량구매계약'으로 이 정책은 실행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지난 2009년에도 유가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096770)(당시 SK에너지)·GS칼텍스·S-Oil(010950)·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의 '전량구매계약'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반발과 로비에 결국 지경부와 공정위는 한발 물러서야만 했다.
 
공정위는 2010년 정유사들 입장을 감안, '구분저장·구분표시할 경우' 혼합판매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다소 완화했다. 이 역시 주유소·정유사 간 현실적인 불공정 거래관행과 소비자들의 혼합판매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올초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는 공정위를 통해 '주유소·정유사 간 전량구매계약 강제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에 예시조항으로 명시하는 등 정유사의 수직적 판매 구조 정비를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 정부가 '구분저장 시설 없이' 혼합판매가 가능하게 정유사·주유소 간 표준계약서를 변경한 것은 정부의 '혼합판매' 실행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물론 정유 업계의 시장점유율 다툼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정유사들은 기존 자사 폴 주유소 외에 타사 주유소에도 기름 공급을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부진한 실적을 만회할 기회로 받아들였다. 실적 악화가 기존 정유사의 담합 체제를 근본적으로 허물 수 있게 만들었다.
 
◇혼합판매, 기름값 안정으로 이어지나?
 
정부는 혼합판매 정책 시행으로 중장기적인 기름값 안정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주유소가 다양한 경로로 기름을 구입하면 자연히 공급사들의 경쟁으로 공급가가 낮아지고, 이는 결국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분석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기대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 혼합판매를 희망하는 주유소들은 기존 공급사들과의 계약 만료 후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정부는 이 기간 희망 주유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혼합판매 물량을 확보할 경우 일정부분 판매가격 인하 여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유소가 혼합판매가 가능한 물량(전체물량의 20%)을  50원 저렴하게 구입했다면 판매가격 10원(50원 X 20%) 인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7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중인 전자상거래와 상호작용할 경우 가격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혼합판매를 통한 기름값 인하 효과는 리터(ℓ)당 10~30원일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전체 판매량의 20%만 혼합석유를 판매할 수 있고, 세제 혜택(0.3%) 또한 적어 기름값이 안정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 정부가 이번 '혼합판매' 시행안에서 세금조정이나 석유제품가격공개제 등 민감한 문제를 제외한 것도 부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고'환율·'고'유류세, 기름값 인하 걸림돌 여전해
 
2008년 7월 국제유가는 150달러까지 치솟았다. 당시 국내 휘발유 최고가격은 리터(ℓ)당 2150원선에서 거래됐다.
 
최근 국내 휘발유값이 최대치를 경신했을 때의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조금 상회했다. 이 때 국내 판매가는 2241원을 기록, 원가가 30달러 저렴함에도 오히려 휘발유값은 100원 정도 비쌌다.
 
환율은 2008년 7월 1달러당 대략 1010원 정도였고, 올 2월에는 1125원 정도였다. 환차를 감안하면 결국 소비자들은 1달러치 기름을 사는데 100원씩 더 주고 산 셈이다.
 
기름값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단골메뉴였던 유류세 인하 또한 이번 시행안에서 빠져 기름값 안정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7월 셋째주 휘발유 판매가격(ℓ당 1948.72원)을 기준으로 정유사의 유통비용·마진과 유류세가 차지하는 금액은 각각 5.22원과 835.98원이었다.
 
지난 2월 다섯째주 기준으로는 정유사의 유통비용·마진은 52.60원, 유류세는 922.03원을 기록했다.
 
2008년 당시 여론의 등살에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0% 내린 것이 그나마 국내 기름값을 지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던 동인이었다. 당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를 상회해, 고유가의 멍울이 산업계 전반을 강타했다.
 
그럼에도 2012년 유류세는 2008년과 비교해 86.05원 더 올랐다. 유류세가 환원되면서 국내 기름값 상승폭을 키운 셈이다.
 
정유사들의 유통비용·마진도 2008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면서 국내 기름값 상승에 한 몫했다.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국제 유가 하락기에 정유사들과 주유소들의 유통비용과 마진은 국제 휘발유 가격이 상승할 당시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결국 국내 판매가격이 국제 유가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 몫으로 돌아갔다.
 
소비자시민모임이 국내 정유사들의 정유사·주유소들의 1월1주~6월3주까지 유통비용 및 마진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 "가격이 선택 결정요인"
 
서울YMCA는 7월27일 "혼합판매는 소비자가 어떤 회사 제품인지 모르고 살 수밖에 없어 '알 권리'와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이에 자영주유소연합회 측은 "혼합판매 철회 주장을 하기 이전에 국내 정유3사(SK, GS, H/D)들이 수 십년간에 걸쳐 23%의 혼합판매를 해 오고 있는 사실에는 왜 묵묵부답하고 있는지 먼저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연합회 측은 서울YMCA의 반발 배경에 정유사가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소비자인식도 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특정 정유사 제품의 품질이나 브랜드보다는 가격, 주유소 위치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택한다"고 말했다. 
 
또 "연구용역 결과 제품 혼합 시 품질, 연비, 배기가스 배출량 등 성능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을 통해 정유사 등 이해당사자들의 소비자를 앞세운 논리에 오히려 소비자 피해만 커지는 국내 정유 유통현장의 문제점만 고스란히 드러났다. 정부 또한 정유사 압박에만 그칠 게 아니라 고통분담 차원에서 유류세 인하라는 결단을 해야 할 시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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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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