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의위원을 '심의'해야 하는 아이러니

입력 : 2012-08-13 오전 8:10:09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한 분은 회피, 한 분은 기권, 이게 뭔가? 상당히 테크니컬하다."
 
"제재하기 싫으면 문제없다는 의견을, 정치적 부담지기 싫으면 기권하면 되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위원 2명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 9일 오후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다.
 
이날 이견이 충돌한 건 MBC <뉴스데스크> '권재홍 앵커 부상 보도' 심의 결과 때문.
 
논의 결과 '문제 없음' 4건, '시청자 사과' 2건, '시청자 사과 및 징계' 1건이 나왔는데 회의를 대행하던 권혁부 부위원장이 '부결'을 선언하며 논란이 붙었다.
 
권혁부 부위원장은 '징계'를 언급한 위원이 전체 과반을 넘지 않기 때문에 안건 자체가 부결됐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권으로 '징계'든 '문제 없음'이든 어느 쪽도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계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심의위원은 9명으로 과반수를 넘기려면 5명이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해당 안건에 대한 결과는 2명이 빠져서 4 대 3으로 갈렸을 뿐이다.
 
결국 안건은 '부결'인지 '미결'인지 위원들간 논쟁을 거듭하다 "사무처에서 확인해 법적 효과가 어떻게 되는 건지 향후 보고"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전후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MBC 노조의 파업기간 전파를 탄 <뉴스데스크> '권재홍 앵커 부상 보도(5월 17일 방영)'가 심의 대상에 올랐다.
 
해당 리포트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하는 도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권재홍 보도본부장은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았고 그 뒤 20여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는 구체적 부연도 이어졌다.
 
이에 대한 '팩트'를 놓고 MBC 노사간 목소리가 엇갈렸고 비디오 판독결과 조합원의 직접 가해는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BC 사측은 권재홍 앵커가 “경비원 뒤를 따라가다 발을 헛디뎌 신체에 충격을 입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방통심의위의 9일 전체회의는 이 보도의 징계 수위를 논하는 자리였다.
 
박만 위원장은 회의가 개시되자 "개인적으로 권재홍 앵커와 고등학교 선후배간으로 상당히 가깝다"는 이유를 대며 퇴장했다.
 
"30년 지난 걸 갖고 사유로 삼으면 할 일 있겠나"는 '만류'가 있었지만, 그는 "권 앵커의 말에 내가 끌려갈 염려가 있지 않나, 오해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회피'를 택했다.
 
뒤이어 회의를 진행하던 권혁부 부위원장은 느닷없이 '기권' 의사를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본건은 방통뒤 설치법 22조 3항에 따라 출석의원 과반을 못 얻어 부결됐다"고 선언을 했다.
 
"기권의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에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맞서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위원들이 회의를 개시하며 "품위와 폼격 있는 회의"를 주창한 바로 뒤에 벌어진 일이다.
 
소동을 지켜본 우리는 마냥 웃을 수 있을까?
 
문제의 본질은 결국 '정치심의'다.
 
심의를 '포기'하거나 '문제 없다'고 결론 내린 6명은 청와대와 여당이 추천한 인사이고, '제재'를 주장한 3명은 야당에서 추천했다.
 
방송이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명백한 데도 그걸 논의하는 자리는 매번 정부여당에 기울고 있다.
 
심지어 '의도'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정상적 논의와 표결 절차도 얼마든지 이탈할 수 있다는 걸 이날 회의는 보여줬다.
 
권혁부 부위원장에게 묻는다.
 
해당 심의는 이미 두 달 넘게 끌어온 사안인데 이날로 최종 부결 처리하면 속이 시원했을까?
 
그 나름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겠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위원회의 적나라한 수준이다.
 
세간에선 방통심의위를 두고 '검열의 아웃소싱'이란 조롱마저 내고 있다.
 
인사와 재원이 대통령과 대통령직속기구에 매여 있는 한 숙명처럼 따라붙을 시선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민간기구 성격을 제대로 구현하는 건 결국 위원회가 할 몫이다.
 
하지만 비판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심의위원을 대상으로 방통심의위 노조가 평가를 실시한 건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심의기구 개편 논의는 이미 불붙은 상황이다.
 
이러니 출범 당시의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를 별도 민간기구로, 합의제기구로 만든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
 
이에 대한 답은 위원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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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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