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반드시 해야하는 이야기들을 하자!'
국내 최초 연극인 협동조합 '고인돌 연극농장'이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 3월 창단 선포 이후 1년여의 준비기간을 통해 내부시스템 정비는 어느 정도 마쳤다. 다음달 2일까지 '연극, 노무현 3story'라는 첫번째 작품으로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관객을 맞는다.
'고인돌 연극농장'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하는 예술을 지향한다. 창립의도에 공감해 조합원이 된 연극인들 수가 무려 100여명이다. 이중에는 극단 76 대표 기국서, 극단 완자무늬 대표 김태수, 배우 남명렬, 배우 맹봉학 등 유명 연극인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극단 위주로 움직이는 연극계의 특성상 이처럼 대규모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 배경에는 발로 뛰며 연극계의 고리 역할을 자처한 사람이 있다. 고인돌 연극농장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본업인 연출가 외에 전방위 행정가로 맹활약 중인 그를 16일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만났다. 만나보니 현장에서 느낀 절절한 경험이 행정가로 일하는 데 든든한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행정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거둬들이는 것이 축제지, 하향식으로 기획할 일은 아니다' 등 공연계를 향한 애정어린 쓴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고인돌 연극농장'에 대해 소개해 달라. 연극인 100여명이 모였는데 창단 과정이 궁금하다.
▲'고인돌 연극농장'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창단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연극인들이 외부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해 말부터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연극인의 목소리를 내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전에는 국회의원이나 대선주자, 관계자를 불러 포럼 형식으로 연극계 시스템이나 지원정책을 제안하던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연극계에서 연극적인 방법으로 우리 생각과 의견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자본의 구애에서 벗어나 옛 우리 조상의 두레정신을 되살리면서 연극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순수연극이나 목적성을 띤 연극의 경우 공연해 봐야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연극인 스스로 제작시스템을 갖기 쉽지 않다. 고민하던 중 협동조합법을 알게 됐고 그에 맞춰 시스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인돌 연극농장'이란 명칭의 뜻은?
▲'고인돌'과 '연극농장'의 합성어다. 20대 초반 강화도에 1년 정도 살면서 책에서만 보던 고인돌을 처음 보게됐다. '누군가의 죽음, 혹은 삶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저렇게 큰 돌을 끌어다가 세웠구나'라는, 약간은 시적 감상에 젖었던 것 같다(웃음). 죽음이나 무덤이라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돌을 옮긴다는 것'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언젠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면 고인돌이라는 이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극농장은 친환경을 지향한다는 뜻 외에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의 밭에 씨앗을 뿌리고, 키워내고,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농사라는 것이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 아닌가. 연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농장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연극농장은 이런 여러가지 뉘앙스들을 다 담고 있는 명칭이다.
-'고인돌 연극농장'의 첫 작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다. 대놓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극인데 부담감은 없나?
▲ 그런 부담은 별로 없다. 왜냐면 연극으로 누구를 선동하자거나 정치적 커넥션을 만들자거나 이런 개념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시국적으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걸 정리하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쉬웠다. 국가적으로 큰 일들, 예를 들면 항일투쟁이라든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제대로 정리하며 가야하지 않을까.
물론 연극을 만든다고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큰 의미가 있는 사건들을 연극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표현함으로써 연극하는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개인적으로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자성이나 자각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번 공연 제작과정에서 '연극, 노무현 3story'라는 공연 자체를 자기 이익으로 취하려고 하는 태도를 띤 집단과는 만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자본금, 발기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외부 단체들과 거의 만나지 않았다. 단, 공연의 뚜껑을 열어놓고 난 이후 관심을 가져오는 단체들에는 열린 마음으로 대할 생각이다. 여야,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우리 연극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다 만날 수 있다.
-제작비 부담은 어떻게 해결했나?
▲연극이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지점이 철저하게 오프라인 작업이고 철저하게 사람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작업방식을 갖고 있다. 참여하는 배우와 스탭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식으로 재원을 충당했고, 그 외 들어가는 현금적인 측면은 협동조합 정신에 맞춰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사실 연극에서는 60% 이상이 인건비다. 나머지 40% 정도는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다 끝나더라도 아마 돈을 벌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십시일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를 만드는 게 목적인데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첫 공연 후 관객의 반응은?
▲관객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발걸음이나 태도 같은 것을 보니 '우리 공연이 나쁘지 않았구나, 의미전달은 됐겠구나' 그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고인돌 연극농장'은 언론 파업 당시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사회운동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 물론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서 에너지 혹은 힘이 모이면 밖으로 방출될 수 밖에 없는데 밖으로 쏟아내는 방법은 공연도 있지만 공연보다 가벼우면서 게릴라적인 방법도 있을 거고…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다. 또 연극을 통해 미래세대인 젊은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생각 중이다. 일단은 '연극, 노무현'이 첫 사업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서 먼저 내부 결속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나서 결속된 에너지가 결국 밖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를 찾게 되고 사업들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달라.
▲크게는 공연사업이 있고, 그 외에는 제도권에서 하지 못하는 교육사업이 있다. 개인적으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교육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중에서 연극은 종합적인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극을 통한 예술교육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 말하는 교육연극에서의 연극교육 같은 형태는 아니고, 예술교육을 주말농장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 하려고 한다. 지금 준비 중이다.
연극인 복지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어렵고 긴 안목이 필요한 문제다. 복지라는 것은 사실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어 외롭다'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일단 외롭지 않다'가 복지의 출발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있고,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복지'를 통해서 그 다음 단계, 즉 물질적인 부분을 포함한 여러가지 복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국가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복지다. 돈으로 할 수 있는 복지는 한계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술은 탁월한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인돌 연극농장은 예술인 협동조합을 통해 마음의 복지를 통한, 다음 단계 사업까지 진행하려 한다.
-사회, 언론,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 첫 작품에는 언론과 사회 얘기를 주로 다뤘는데 다음 작품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계획인가?
▲세 가지 정도 주제를 생각하고 잇다. 먼저 교육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예술하는 사람들끼리 얘기하다보면 결국은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라는 결론에 꽂힌다. 일반 직장인들과 얘기해도 마찬가지다. '교육을 어떻게 하자'가 아니라 '현재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청소년들의 교육 문제를 다루고 싶다. 두번째는 1 대 99 사회, 소득의 분배 문제, 자본의 축적과 나눔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다. 그 다음은 노동문제인데 이건 차후에 할 생각이다. 일단은 교육 문제가 가장 급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행정가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연극계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인가?
▲세상에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세탁소에는 세탁 전문가, 떡볶이집에는 떡볶이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을 잘 길러내고, 전문가들이 잘하는 것들을 재분배하고, 또 전문가들을 만나게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연출만 하면서 느꼈던 게 연극계에 자기 작품을 자기 색깔로 만드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들을 사회적으로 노출시키고 관객들을 만나게 하는 네트워크나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의 역량있는 연극인들을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할수록 이런 문제는 예술작품을 만들며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라 행정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인들의 피부에 와닿는 행정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 '내가 느꼈던 것, 알고 있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고, 여기까지 오게됐다.
-예술가로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행정의 답답한 부분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행정가이기 때문에 보이는 답답한 부분들도 있을텐데?
▲있다. 사실 소규모 극단의 대표들은 행정을 하긴 한다. 그런데 '너무 소극적인 태도로 극단을 운영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행정이 나를 위한 행정이 아닌, '우리, 함께'라는 행정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점과 점이 모여 선을 만들듯 각각의 점들이 갖는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개인들이 힘들다 보니 관심을 가질 상황이 안되는 거다.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 자주 얘기하는데, 아쉽다. 어쨌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각자가 열심히 파고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