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조선업계, '대마불사' 속 중소업체는 '오늘내일'

(특별기획-산업현장을가다!)⑤통영·부산 산업단지

입력 : 2012-08-24 오후 2:59:55
[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염현석기자] 지난 21일 오전 9시 경상남도 통영 안정공단의 조선소 건조장.
 
대형 크레인과 지게차들이 쉴새 없이 자재를 실어 나르고 있고, 근로자들은 용접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얼핏 봐서는 불황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얼마 전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간 중소업체였다.
 
"아직은 2년전에 받았던 수주로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일마저 떨어지면…"
 
통영의 한 조선업 관계자가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안정공단에 위치한 이 업체는 몇 년전만 해도 5만톤급의 선박을 건조하는 소위 '잘나가는' 업체였다.
 
최근 국내에 불어닥친 유럽발 경제위기 여파로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경남권의 조선업체들이다.
 
특히 통영 안정공단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SPP, 성동조선해양 등 중소제조업체들의 상황은 불황을 넘어 처참한 수준이다. SPP와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당기순손실로 각각 3000억원, 3800억원을 기록했다.
 
◇통영지역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모습.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약 30% 순이익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들 기업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양플랜트라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반면 중소조선업체와 조선부품업체들의 경우 해양플랜트는 '먼 나라 얘기'다.
 
중소업체의 한 관계자는 "해양플랜트가 돈이 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면서도 "설비 투자비용 등이 너무 커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 중소업체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한탄했다.
 
부산·경남 지역 경제의 주춧돌이었던 '조선업'은 장기화 되고 있는 경기불황으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실해졌다.
 
특히 경남권 중소 조선업체들은 해양플랜트로의 전환이란 회생 방법을 목전에 두고도 단기 유동성 확보와 연구개발비용의 벽에 막혀 '파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견 조선부품업체의 도산..계속되는 위기
 
"조선업은 사이클을 고려해야한다. 대기업 업황이 중기에 영향을 끼치는데 시간이 걸린다. 약 6개월정도가 걸린다고 보면 된다. 지난해에 들어온 수주 물량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거다."
 
어우수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 고객지원팀장이 현재 녹산산업단지 조선업 상황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녹산단지의 가동률은 지난 6월을 기준으로 83.9%다. 다른 산업단지의 가동률이 7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수준이다.
 
◇부산 녹산공단 전경
 
하지만 통상 수주부터 납품까지의 기간이 2~3년 소요되는 조선업 특성상 현재 가동률은 사실상 후행지수로 정의해야 한다. 쉽게 말해 현재 작업 중인 일감은 2~3년 전에 수주한 물량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가동률은 정상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특히, 지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원자재값은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고 유럽의 대형 발주처들은 계약한 선박마저 발주를 취소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선박 건조 수주는 중소업체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또 조선업계 불황이 지속되다 보니 조선업에 종사하던 대형 업체들은 플랜트 쪽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최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형조선업체들의 수주 물량 중 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 수준으로 높아졌다.
 
산단공 관계자들은 "조선과 플랜트는 업종의 특성상 중복되는 공정이 많다보니 생각보다 전환이 쉽다"면서 "정부 차원의 R&D 지원만 된다면 대규모 업체든, 중소업체든 업종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소업체들도 연구개발만 할 수 있다면 해양플랜트로의 업종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R&D비용이다.
 
해양플랜트와 조선업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더라도 사용되는 부품들은 상이하다. 공단 내 중소부품업체들의 현 상황상 연구 개발비만 2억~3억원씩 소요되는 R&D 비용을 개별기업 자체만으로 부담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산단공 관계자는 미니클러스터 사업을 통해 작년에만 해당지역에 2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지만, 부산 녹산산업단지에는 1508개사가 입주해있다. 그 중 45%인 670여개 업체가 조선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정부의 해택은 이 중 1%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무너지는 중소 조선업체..통영이 쓰러져간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조선업계 대·중소기업 불균형에 따른 여파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는 지역은 통영 안정공단이다.
 
통영 안정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은 대부분 선박을 조립해 완성하는 중소 조선업체들이다. 취재를 위해 안정공단의 조선업체와 연락을 취했지만 인터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공단의 한 근로자는 "지금 이곳 업체들 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며 "올 초만 하더라도 수주 물량이 소형선박을 위주로 조금씩은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는 "지금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며 "일단은 지금까지 수주한 선박을 작업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며 황급히 일터로 돌아갔다.
 
실제 안정공단에 입주해 있는 중소업체들은 기존에 수주했던 선박제조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일감이다.
 
글로벌 경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대형 조선업체들 또한 수주가 어려워지자 중소업체들의 영역이었던 1만~2만톤 물량까지 싹쓸이하면서 안정공단 내 중소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몇해 전 조선 업황이 한창 좋으니까 부품보다도 완성배를 만드는 회사들이 급격하게 늘어 공급과잉이 됐다"며 "발주 경쟁이 심각해지고, 단가 후려치기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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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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