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작가 박완서 1주기 추모작이자 배우 손숙의 모노드라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상연 중인 충무아트홀.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한산하던 극장은 어느새 중년 관객들로 붐빈다. 손을 맞잡은 어머니와 딸의 모습도 심심치않게 눈에 띈다. 낮 시간인데도 관객석 대부분이 찼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평가받던 박완서와 안정된 연기력으로 지지를 받는 손숙의 조합이 빚어낸 힘이다.
공연팀은 관객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원작 소설을 짜임새 있는 연극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박완서의 연극성 넘치는 문장에 배우의 노련한 연기, 그리고 깔끔한 연출까지 더해져 훌륭한 삼박자를 이뤘다.
박완서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연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정신으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육체'에 주목한 작품이다. 육체의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 극은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입을 빌린다.
사회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아들 덕에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 대접을 받게 되고 아들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도 어렴풋이 알게된다. 그러나 생떼같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슬픔은 고결한 정신의 힘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스펙 좋은 남의 아들을 단 한번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어느 동창이 하반신 마비인 아들을 '공깃돌 굴리듯' 하는 모습을 보고 그만 한 순간에 무너져내린다.
어찌보면 간결한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의 아픈 시대사와 생전에 아들을 잃었던 작가의 실제경험이 겹쳐져 묵직하게 다가온다. 개인의 아픔과 시대의 아픔은 극중 내내 시시때때로 교차하며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후빈다.
배우 손숙의 노련한 호흡 덕에 아들 잃은 어머니의 아픔은 절절하면서도 절제된 채 전달됐다. 손윗동서와 전화통화를 하는 형식으로 혼자서 1시간여를 이끌어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역할을 맡은 손씨는 극중 인물이 겪는, 깊은 혼돈의 상태에 온몸을 내맡긴 채 감정의 세밀한 상처들을 하나하나 육화해냈다.
특히 손윗동서에게 따지듯 앙칼진 목소리를 내뱉다 한순간에 스산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이르자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신파적으로 흐를 수 있는 대목들마다 손씨의 적절한 감정조절은 빛을 발했다.
소설을 극화한 작품인만큼 대사전달력이 아무래도 약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손씨의 명확한 발음과 뛰어난 전달력 덕분에 문학적 상징을 품은 대사들은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됐다.
연출의 사려깊은 선택도 작품의 전달력, 배우의 연기에 큰 힘을 보탰다.
무대는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평범한 가정집 거실로 꾸며졌으나 관객석과 다소 거리를 둬 무엇인가 중요한 게 빠진 듯한 '텅 빈' 느낌을 자아냈다. 이밖에 연극성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될만한 소설 속 키워드들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 극적 재미를 더했다.
꼬리뼈가 눌어붙은 스테인리스 들통, '사람보다 목숨이 질긴 물건'을 내다 버리기 위한 종이박스, 만지작 거리기 좋은 베개 등 간단한 소도구가 효과적으로 활용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모노드라마에 후각적, 시각적, 촉각적 상상력을 더했다.
극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결국 육체요, 살이다. 작가처럼 가슴에 누군가를 묻어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의 의미는 시인 김현승의 동명시에서처럼 '육의 상실을 슬퍼하는 눈물'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공연을 보고 나면 독한 세상에서 인간의 육체가 정신보다 앞서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원작 박완서, 연출 유승희, 출연 손숙, 9월23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