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이보라기자] 소득역진성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전기요금 누진제가 오히려 역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구인원이 많을수록 요금부담이 커져 1~2인 가구가 늘고 있는 인구구조변화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각 가정에 평소보다 2~5배나 많은 전기요금 폭탄이 날아들고 있지만, 1~2인 가정의 경우 누진요금제의 구조적인 이유로 폭탄을 피하고 있다.
7일
한국전력(015760)에 따르면 이달 평소보다 2~5배 많은 전기요금고지서가 배부되면서 전날 전기요금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는 서버가 다운됐으며, 한전은 전화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수서에서 혼자 자취하는 최모(27세) 씨의 경우 지난달 에어컨을 마음껏 사용하고서도 평소와 큰 차이 없는 요금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최씨가 에어컨을 속시원히 사용하면서도 다른 집보다 전기요금에 큰 부담을 느끼지 못한 것은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대용량 가전을 쓰거나 전기를 많이 쓰는 부유층에게 더 많은 요금부담을 지우고, 전기를 덜 쓰는 저소득 가구에는 요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됐는데, 최근 1~2인 가구가 늘면서 소득과 관계 없이 가구인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많을수록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시간과 전기량이 달라지는데 현재의 누진요금제는 이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100kWh 이하로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1인 가구는 전체 전력사용가구의 42%에 달하는데, 이 중 저소득층은 10%에 불과하다.
1인가구의 90%는 중상층 이상의 가구이지만, 적은 전력사용으로 요금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3대 이상이 모여살거나 가족이 많은 경우 전기사용량이 늘어 누진요금를 적용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누진제를 적용하면 100kWh이하를 사용하는 1단계 요금은 57.9원이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501kWh 이상에 해당되는 6단계는 677.3원이다. 무려 11.7배나 차이난다.
즉, 가정에서 400kW를 사용한 경우 한 달 전기요금은 약 6만6000원 수준이지만, 600kWh를 사용할 경우에는 약18만원까지 뛰어 오른다. 사용량이 50% 늘었으나 요금은 300%로 폭등하는 셈이다.
누진제는 특히 겨울의 저소득층 전기요금 부담을 늘리고 있다.
겨울에 전기를 300kWh를 초과해서 사용하는 가구 비중은 전체 평균 1%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기초생활수급자는 9%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름값 부담에 전기장판 등의 전열기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의 전기요금부담이 극대화되는 것.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을 위해 도입된 누진제가 소득 재분배 취지에서 벗어난지 오래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실장은 "우리나라 소득 수준 정도면 열대야에 4인 가정이 에어컨 정도 틀고 잘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제대로 된 기준으로 효용 점검을 통해 취지와 맞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누진제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