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DCS 분쟁으로 규제기관 위상에 치명타

스카이라이프 '가입자 모집 중단' 표명에 조건부 행정처분 유예..KT 등 대놓고 방통위 조롱

입력 : 2012-09-13 오후 11:06:01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KT스카이라이프가 'DCS(Dish Convergence Solution)' 가입자를 더는 모집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계철, 이하 방통위)의 시정명령이 잠정 유예됐다.
 
방통위는 대신 DCS 영업 현황을 주기적으로 감시해서 가입자 모집이 이어지면 곧바로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 예고한 '방송제도 연구반(가칭)'을 다음 주부터 운용해 폭넓은 견해간 중지를 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반 책임자는 김충식 상임위원이 맡고 반장은 김준상 방송정책국장이 담당해 '유연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는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보고안건을 접수했다.
 
방통위 결정은 DCS에 대한 주기적 모니터를 조건으로 스카이라이프에 대한 제재를 연기한 셈인데, 이는 앞서 스카이라이프 측에서 '신규 가입자 모집 중지'를 전격적으로 알린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DCS 분쟁은 일차적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됐지만 방통위는 규제기관으로서 위상에 치명타를 입고 이번 분쟁의 제일 피해자로 지목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무엇보다 KT측이 공개발언으로 방통위에 톡톡히 망신을 안긴 데다 방통위 역시 분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능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방통위, 조건부 제재 유예
 
방통위는 당초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청문을 진행하고 행정처분을 결정하기로 했지만 스카이라이프가 가입자 모집 중단을 밝힌 데 따라 전체회의 하루 전 상임위원간 '티타임'을 거쳐 '제재 유예'를 결정했다.
 
위원들은 12일 '티타임'에서 스카이라이프에 '엄중히 경고'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으며 이는 실제 이틀에 걸쳐 김준상 방송정책국장과 문재철 스카이라이프 사장, 방통위 일부 상임위원 사이에서 유선으로 이뤄졌다.
 
오광혁 방통위 뉴미디어과장은 "몇 가지 중요한 상황 변화가 있었다"며 "스카이라이프는 언론 등을 통해 방통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가 문서로 가입자 모집 중단을 알려왔고 정부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비쳐진 것은 유감이지만 방통위와 사업자 모두 이번 사건으로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방통위는 앞으로 조화롭고 유연한 체계를 만드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카이라이프 두손 들었나
 
한 발 물러선 스카이라이프의 입장 표명은 방통위가 DCS에 위법 판단을 내리고 시정권고와 행정처분을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방통위는 지난 달 말 DCS를 위법으로 결정하고 신규가입자 모집 중단과 기존가입자 정리를 촉구하는 한편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고 영업 정지까지 포함하는 시정명령을 내리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스카이라이프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영업을 계속할 뜻을 비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가 방통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전격 '가입자 모집 중단'을 천명하면서 제재를 피했다.
 
대신 소비자를 위한 충분한 시장조사, 연구반 운영, 제도 개선을 늦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 사안을 내걸었다.
 
하지만 스카이라이프의 진정성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는 데다 방통위의 일처리 방식에도 계속해서 물음표가 따라붙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스카이라이프가 일부언론을 통해 '방송제도 연구반 운영'을 전제로 가입자 모집 중단을 공언한 상황에서 방통위가 이를 안이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오광혁 과장은 이에 대해 "스카이라이프가 전달한 문서에는 가입자 모집 중단이 분명한 '워딩'으로 담겨 있고 연구반 운영은 '요청' 형태로 밝혔다"는 점에서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스카이라이프가 언론에 어떤 입장을 흘리든 방통위는 스카이라이프가 보낸 공식문서로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방통위와 KT의 대립각은 여전
 
방통위는 13일 오후 늦게 스카이라이프가 전달한 문서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최근 이석채 KT 회장의 공개석상 발언과 맞물려 명예회복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회장은 지난 11일 ICT 대연합 출범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DCS에 대한 방통위 결정을 가리켜 '기술 발전의 걸림돌로 방통위가 자리하고 있다'는 불만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DCS의 위법여부 판단과 별개로 방통위가 사업자간 교통정리를 하면서 따끔하게 중재하지 못해 여진이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방통위는 '가입자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기존 DCS 가입자 처리에 대해 '빠른 시일 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을 뿐 스카이라이프에 구체적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다.
 
스카이라이프 역시 DCS 가입자 현황을 내부에서 아직 취합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선 DCS 기존가입자와 신규가입자 수치마저 명확한 구분이 모호한 상황이다.
 
◇규제기관 위상은 어디로?
 
애초 융합에 대처하기 위해서 출범한 방통위가 이제야 연구반을 통해 통합법제 마련에 나선다고 손을 든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많다.
 
시장에 출현한 결합서비스를 놓고 우왕좌왕하다 규제기관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위원회 내부 역시 분통을 터뜨렸다.
 
김충식 상임위원은 13일 전체회의에서 "DCS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스카이라이프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면 사전에 방송정책국에 협의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생략해 위법시비를 불러일으킨 것 아니냐"고 밝혔다.
 
김 위원은 "방통위 해석을 받아들이고 법을 지키라 했으면 사업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도 계속해서 기자들 통해 반박하고 가입자 모집을 언급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스카이라이프가 보내온 문서는 신규가입자 모집 중단 내용 밖에 없다"며 "기존 가입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고 그렇다고 DCS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얼굴 정면에 침 뱉은 격, 그래놓고 자기들이 그만하자 해서 그만둔 격, 하지만 방통위 얼굴은 이미 침 투성이가 됐다"며 "이게 방송통신관련 규제기관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참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위원은 이석채 KT 회장의 발언에 대해 "누가 사업자고 규제기관인지 구분 안 가는 이 상황이 굴욕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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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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