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과로' 질병, 업무상 재해 인정 어디까지?

입력 : 2012-09-29 오전 5:00:00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추석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추석 특별행사 판매 직원 등은 열흘 전부터 하루종일 제품을 판매하고, 열차승무원 등은 귀성·귀경객을 실어나르느라 업무시간을 초과해 일하기도 한다.
 
또 생산근로자들은 주문량이 급증하면 야근을 해서라도 물품을 생산해내느라 '뇌출혈' 등 질병을 얻는다. 명절을 앞둔 과로로 입은 질병, 법원은 재해로 인정을 해줄까?
 
◇추석 특별행사후 '다리마비' 일용직, '업무상 재해'
 
29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대형마트의 추석특별행사 판매촉진 기간동안 채용돼 열흘간 근무한 후 다리가 마비된 일용직 근로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모(46·여)씨가 "하루 종일 서서 상품 판매촉진 일을 하다 질병을 얻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H대형마트의 '추석특별행사 판촉직원'으로 고용돼 지난 2008년 9월 4일부터 열흘 간 일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둔 다음날 이씨는 팔과 다리에 마비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뇌경색, 편마비'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신청을 했으나 '업무와 질병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는 특별행사 판매대에서 고객들을 응대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판매대 부근을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업무, 진열대에 상품이 부족할 경우 물류창고에서 상품을 가져와서 보충하는 업무까지 담당했고,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서서 근무해야 했는데, 10일 동안 휴무 없이 계속 일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이씨는 휴일도 없이 지속적으로 선물세트 홍보와 보충업무 등을 수행하면서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며 "판촉직원 한 명이 그만두고 두 사람이 하던 상품 홍보를 이씨 혼자서 3일을 근무하게 돼 이씨의 부담은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같은 정신적·육체적 부담이 누적된 결과 근로시간이 종료된 다음날 '다리마비' 증세의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지병 있어도 명절 업무 과중했으면 산재"
 
법원은 식품회사의 근로자가 추석을 맞아 급증한 주문물량을 생산해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병을 얻은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두부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뇌출혈이 발생한 유모씨가 그런 경우인데, 서울고법은 유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최초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부공장은 통상 명절 전에 주문량이 폭주해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A식품회사도 추석 사흘 전부터 3일간 평소의 2배 가량을 생산했고, 유씨를 포함한 근로자들은 야간 작업 후에도 퇴근하지 않고 계속해 근무했다"며 "이와 함께 평소 고혈압 약을 복용했던 유씨의 건강상태를 고용주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씨의 뇌출혈은 장기간의 야간근무로 만성적인 업무부담이 있는 상태에서, 단기간에 급격히 증가한 업무부담으로 인한 과로 탓에 발생했거나 또는 지병인 고혈압이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술·담배 즐겼다고 재해 불인정 안돼"
 
연휴기간에 귀성·객이 이용하는 열차시간표가 늘어난 탓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한 열차승무원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경우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법원은 당사자가 평소 흡연과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더라도 '질병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서울열차승무사무소 열차승무차장으로 근무해오던 김모(49)씨는 2004년 10월2일 승차 근무를 마친 뒤 뇌출혈을 일으켜 공무상 요양승인을 받았으나, 장해보상금은 절반밖에 못받았다. 그동안 술과 담배를 즐긴 김씨에게 뇌출혈 발병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유씨는 '마신 술이나 피운 담배의 양이 뇌출혈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닌데, 이를 중대한 과실로 보고 급여제한 처분을 한 것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앞서 김씨는 뇌출혈 발병 이전 3개월(2004년 7월~9월) 동안 총 723시간을 근무하면서 월 평균 1.6일밖에 쉬지 못했다. 게다가 김씨가 뇌출혈을 일으키기 직전인 9월24일부터 30일까지는 추석연휴 특별수송기간으로 7일간 70시간34분을 근무하는 등 김씨의 업무량이 폭증한 상태였다.
 
재판부는 "'중대한 과실'이란 개선이 필요한 생활습관을 지속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전년도 건강검진 결과 이상이 없는 점 등에 비춰볼 때 김씨가 평소 음주와 흡연을 한 것이 장해보상금의 급여제한사유인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김씨는 과다한 업무량과 추석 연휴 특별수송기간 등 급격하게 증가한 업무로 인해 누적된 과로로 뇌출혈이 발생했다"며 질병과 공무 간에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음주와 흡연이 어떤 식으로든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라 하더라도, 그런 정도의 상식은 과도한 인터넷 이용이나 TV시청,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운동부족 등 기타 무수히 많은 생활습관에도 공통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생활습관이 있는 경우 모두 급여제한사유로 삼는다면 공무원연금법의 취지를 몰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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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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