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승원기자] 금융당국이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발행한 후순위채권을 자사 점포망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제한할 것이라는 방침에도 증권사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후순위채권에 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가 넘쳐나고 있어 일반 투자자들에게 굳이 판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 "불안전판매 소지 원천 차단"..자사 후순위채 직접판매 제한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발행한 후순위채권을 자사 점포망을 통해 일반 투자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금융회사의 후순위채권 직접 판매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
발행사 부도 시 선순위에 비해 부채상환이 늦는데다 예금자보호가 안 되는 후순위채권을 금융회사가 직접 판매할 경우 불완전판매 소지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후순위채권 직접 판매 제한과 함께 사전보고제도를 이용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금융회사의 후순위채권 발행을 억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이 기준 이하일 경우 후순위채권 발행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금감원이 후순위채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최근 금융회사의 후순위채권 발행이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융회사의 후순위채권 발행잔액은 2008년 말 42조4826억원에서 2009년 말 38조764억원, 2010년 37조8203억원으로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해 말 39조4631억원으로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지난 6월 말에는 40조4290억원을 기록하며 40조원은 돌파했다.
특히, 증권사의 후순위채권 발행잔액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매년 증가해 2008년 6502억원에서 지난 6월말 2조3091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증권사 "자사 후순위채권에 대한 기관 수요 많아 문제 없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의 후순위채권 관리·감독 강화에 대해 별 영향이 없다는 반응이다.
후순위채권에 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수요가 넘쳐나고 있는 가운데 불안전판매 소지라는 위험을 부담해가면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후순위채권을 판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1000억원 규모의 무보증 후순위금융채 제 1-1과 1-2를 발행하기로 결정한 하이투자증권은 창구를 통한 일반 투자자들이 아닌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물량을 소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 말 3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후순위채권을 발행한 메리츠증권도 채권 물량 전부가 기관 투자자들에 의해 소화됐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되는 후순위채권의 경우엔 투자자들이 채권을 발행하는 회사에 대해 모르고 판매를 담당하는 영업점 직원의 말만 들어서 발생한 사안"이라며 "신용등급이 A 이상인 증권사가 발행한 후순위채권은 일반 투자자가 아닌 기관으로 모든 물량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도 "최근에 후순위채권을 발행한 증권사들의 물량 대부분이 기관으로 나갔다"며 "불완전 판매의 소지 문제로 증권사가 후순위채권을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하지 않는다 해도 해당 증권사에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NH농협증권은 지난 7월 말 개인 투자자 200억원, 기관 투자자 300억원 등 총 500억원 규모의 5년 만기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에게 채권발행액의 일정 규모를 할당한 것은 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라는 것이 해당 증권사의 설명이다.
NH농협증권 관계자는 "기관 대상으로 300억원을 할당했지만, 총 3558억원이 들어왔다"며 "개인의 경우엔 200억원 모집에 204억원만 들어와 기관을 대상으로 후순위채권을 발행했어도 해당 물량이 충분히 소화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후순위채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관과 달리 일반 고객의 경우 설명을 하는 부분 등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며 "저금리 기조인 현 상황에서 개인 고객들에게 금리를 더 드리려는 측면이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