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최근 불거진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해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특히,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로 일축했다.
이는 지난달 24일 5.16과 유신 등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며 자신의 기존 주장을 뒤집었던 '과거사 사과'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더 이상 야권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문제로 인해 박 후보는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다. 박 후보의 기자회견은 논란을 종식시키기보다는 더 키웠다는 평가다. 더구나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우려를 할만큼 후폭풍이 거세다.
◇與 "박 후보 발언 의외"..우려 목소리 커져
박 후보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하고 정수장학회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논란만 더 확산시키자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이 과거사 논란의 연장선으로 이어가지는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은 22일 한 라디오에 출연,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의외였다. 기대와는 달리 조금 어긋났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박 후보가)정수장학회 자체의 입장 변화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불분명한 면이 있다"며 "(이번 기자회견이)'돌파구'라기 보다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한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칫 잘못되면 대선 정국이 사실상 야당에게 유리한 프레임 속에서 계속 되지 않겠는가라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며 "전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몇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도대체 선거를 하려고 하는 것인가'라며 아주 걱정된다고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면서 "5.16쿠데타와 유신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하면서 그때 강탈한 남의 재산은 합법이라고 한다면 자질을 의심받는다. 지금이라도 정수장학회는 말끔히 털고 가야 한다"고 박 후보의 전향적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박 후보)참모들께서 왜 그런 어드바이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는 저도 약간 갸웃거려진다"며 "참모들이 좀 더 그런 보좌를 잘 했으면 잘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이날 여론을 의식한 듯 선대위 조직본부 임명장 수여식 참석 직후 최 이사장이 퇴진을 거부한 것과 관련,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한 뒤 서둘러 당사를 떠났다.
박 후보의 기자회견은 결과적으로 정수장학회 논란을 더욱 확산시킨 꼴이 됐다.
◇野 "박 후보의 고집불통 태도 드러나" 맹비난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발언에 대해 야권은 연일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에 대한 기존 입장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고집불통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며 "국민을 상대로 정면돌파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후보가) 기자회견 이후 측근들의 지적에 따라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거듭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두 번, 세 번 '부일장학회 헌납과정에서의 강압' 부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며 "이는 법원 판결과 국기기관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수장학회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박 후보)본인은 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국가기관 조사내용도 부정한다면 행여 대통령이라도 되면 법위에 군림하고 국가기관도 무시하려 들 것 아닌가"라며 "국가지도자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5·16쿠데타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그것의 결과인 정수장학회 문제는 외면하려 한다면 앞선 사과가 선거용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도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를 '강압이 아닌 헌납'이라고 주장하고 끝내 강압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역사인식 오류의 제 2탄, 역사 거꾸로 세우기"라고 비판했다.
앞서 21일에도 민주당은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입장발표 직후 수차례 논평을 내며 "실망을 넘어서 분노한다. 박 후보가 역사 인식이 없어 대통령 후보로 부적격임을 스스로 드러냈다"며 "모든 것을 '아버지 박정희'를 중심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니 강탈이 헌납으로, 장물이 선물로 보이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도 이날 "정수장학회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거기에는 원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측도 연이어 비판을 가했다. 유민영 대변인은 "(박 후보는)2012년 대통령 후보인데도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박 후보와 같은 인식으로는 새로운 미래, 소통하는 대한민국을 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이 미래로 갈 것인가 과거로 갈 것인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 공정과 특권의 대결, 역사가 진보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 등의 결정"이라며 "그런 점에서 박 후보의 기자회견은 많은 국민에게 대단히 실망스러운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지태 씨의 유족들은 박 후보가 김씨를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다"고 지목한 데 대해 "인신공격 발언으로 명예훼손을 했다.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최필립 "이사장직 물러설 계획 없어"
박 후보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최 이사장의 거취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최 이사장과 이사진에 "스스로 해답을 내놓길 바란다"는 선에서 정리했다.
이 가운데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최 이사장은 기자회견 직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사장직을 그만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4년까지 제 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말해 박 후보의 회견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그는 또 "장학재단은 정치집단이 아니다"라며 "정치권에서 저희 장학회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다만, 정수장학회는 이르면 이날 또는 23일 중 긴급이사회 회의를 갖고 장학회가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가 되는 것과 관련, 대책을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정수장학회 정국으로 넘어가는 자체가 거센 후폭풍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 상황을 타개할만한 뾰족한 대안도 없다는 점이다. 박 후보가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