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새누리당이 몸이 달았다.
박근혜 대선 후보의 '정수장학회' 발언이 여론의 질타는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을 받으며 큰 악재로 덮친 가운데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의혹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를 선택하면서 다른 대안이 없는 마당이라 NLL 이슈 만들기에 매달리는 양상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의도가 먹힐지는 극히 미지수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 민주평통 연설을 통해 "NLL은 안건드리고 왔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고 있고,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23일 녹취록까지 제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이번과 같은 의혹제기와 공격을 할 것이라는 걸 예상이나 한 것처럼 "내 맘대로 자대고 죽 긋고 내려오면 제가 내려오기 전에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것 아니냐. 내려오지도 못한다. 아마 판문점 어디에서 좌파 친북 대통령 노무현은 돌아오지 마라. (북에서) 살아라. 이렇게 플래카드가 붙지 않겠나"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돼 새누리당의 NLL 공격은 더욱 옹색해졌다는 평가다.
◇與, NLL문서 폐기 의혹.. 문 후보 해명 요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의혹 확산 노력에 올인한 모습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모습이 역력하다.
새누리당은 23일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전인 지난 2007년 5월 청와대 회의에서 일부 민감한 기록물을 차기 정부에 인계하지 않은 채 폐기토록 지시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언급하며, 당시 회의 참석자로 지목된 문 후보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무성 선대위총괄본부장은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며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는 무슨 잘못을 하고 무엇이 무서워서 역사를 감추려 했는지 국민앞에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내가 아는 어떤 폭군도 사초(史草)를 직접 없애는 역사는 배운 적이 없다"며 " 이게 관행이 되면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로 성장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단장은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기록물을 선별적으로 남겼다면 그건 역사가 아닌 홍보물에 불과하다"며 "이는 국민의 알 권리 침해이자 역사 훼손의 중대 범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한성 법률지원단장은 "(폐기가 사실이라면)10년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3천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범죄 행위"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그놈의 헌법'이라고 했듯 실정법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단면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도 "민주당은 수 십년전 문제를 꺼내 역사인식 문제를 언급하는데, 이번 의혹은 살아있는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하는 '대판 분서갱유'인 만큼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은 국회 본회의를 소집해 이번 사안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에 나서기로 하는 한편, 국회운영위와 행정안전위, 법제사법위 등 관련 상임위원회 합동으로 진상규명 및 폐기 자료 복원을 위한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새누리당은 특히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을 개정해 대통령이 임의로 국정 기록물을 비밀에 붙이거나 첨삭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새누리당은 앞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해 설치했던 당내 '민주당 정부의 영토주권 포기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민주당 정부의 영토주권 포기 및 역사폐기 진상조사 특위'로 확대·개편해 관련 진상규명 활동에 매진키로 했다.
◇盧,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기록관리법 만들며 방대한 기록 남겨
하지만 새누리당의 이같은 공격이 얼마나 먹힐지도 역시 의문스럽다.
당장 새누리당이 문제삼고 있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노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법안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임기가 끝나면 형식적인 기록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록을 파쇄해버렸다. 대부분 종이문서로 된 대통령의 각종 국정 관련 문서는 문서파쇄기에서 파쇄되거나 소각장에서 불태워졌다.
역대 정부별 대통령 기록물은 이승만 7416건, 허정 권한대행 185건, 윤보선 2040건, 박정희 3만7614건, 최규하 2198건, 박충훈 권한대행 69건, 전두환 4만2535건, 노태우 2만1211건, 김영삼 1만7013건, 김대중 17만190건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조선시대의 승정원 일기나 조선왕조실록의 사례와 미국의 대통령 기록물 보존 사례를 연구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관철시켰고, 본인 스스로 사소한 메모까지 기록물로 보존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8년 참여연대는 "이번 대통령 기록물 이관은 우리 역사상 은폐와 폐기 없이 이뤄지는 첫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록물은 30년에 걸쳐 공개 절차를 밟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공공기록 관리와 정보공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정부 최초로 모든 문서결재를 '이지원'이라는 인터넷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했고, 그 기록은 고스란히 전자기록으로 남겼다. 디지털 기록의 특성상 복사는 가능해도 그 기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그 양만 300만건이 넘는다. 역대 대통령의 기록을 모두 합친 30만여건의 10배가 넘는 방대한 양이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등급에 따라 순차적으로 30년에 걸쳐서 공개하도록 했는데, 이는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몇년전부터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의 비화가 미국 국무부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도 봉인되었던 기록이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이런 맥락을 배제한 채 마치 노 전 대통령이 기록을 없애버리려 한 것처럼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원래 새누리당 지지층은 묶어둘 수는 있겠지만 중도층 표심은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NLL 의혹 제기 당시 정문헌 의원은 기록을 봤다는 것을 전제로 주장을 펼쳤고, 기록은폐라는 새로운 의혹제기는 기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상호 모순된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野 "새누리, 해묵은 색깔론 주장 유감스러워"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노무현재단과 민주통합당도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손해볼 게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노무현재단은 23일 <조선일보>가 "2007년 5월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감한 문건의 내용과 함께 문건의 목록도 없애버릴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론을 펼쳤다.
노무현재단은 "그날 회의에는 수석 및 보좌관들은 물론 비서관들까지 수십명이 참석했고, 참석자들은 조선일보가 회의내용을 날조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앞뒤 발언을 다 빼버리고 내용을 왜곡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폐기지시를 했다는 근거로 든 "인계할 때 제목까지 없애버리고 넘겨줄 거냐"는 발언은 앞뒤를 모두 자른채 악의적으로 날조했다고 비판했다.
재단은 "대통령기록관에는 당연히 원본 그대로 이관된다는 것을 전제로, 차기 정부에 공개기록을 인계하는 과정에서 목록까지 공개해서는 안 되는 지정기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기록물은 법으로 보호되는 비공개 지정기록이다. 조선일보는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해진 이 비공개 지정기록물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그 경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민주통합당의 반격도 거세다. "NLL은 안건드리고 왔다"는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이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움츠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가 반박에 나섰다.
정동영·임동원·이재정·이종석 등 전직 통일부장관들이 포진한 위원회는 이날 국회 외교통상위원단과의 연석회의에서 10.4 정상선언 내용과 회담 경과를 제시하며 'NLL 포기 발언'은 허위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2007년 10월3일 남북정상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에 합의해 우리 측이 'NLL을 기점으로 남북 간 등거리.등면적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NLL 인접 남쪽 수역'으로 주장해 합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면 당연히 10ㆍ4 선언에 공동어로수역이 북측 주장대로 NLL 이남에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전 장관은 "(새누리당이) 해묵은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 NLL 공세를 펴는 것은 명백한 구태 정치"라며 "터무니없는 정략적 선동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어떻게든 NLL은 안 건드리고 왔다"는 발언과 녹취록을 소개했다.
박 의원은 "저는 존재하지 않는 녹취록 대신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 녹취록을 가져왔다"며 "자유당으로부터 이어져 온 새누리당의 DNA에는 5년마다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 특수인자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색깔과 북풍이다. 녹취록에서 녹취록 파기 지시까지 도 넘은 발작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고 김지태 회장의 부일장학회 강탈을 부인하면서 수세에 밀리고 있는 새누리당이 꺼져가는 NLL 의혹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의혹을 확산할려고 노력할수록 퇴로가 막히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