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25일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를 계기로 새누리당은 NLL 논란을 확산시키려 애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천 수석의 증언으로 그동안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의혹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오히려 천 수석이 어떤 경로로, 국가 1급 보안기록을 보게 됐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천 수석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본 적은 있다"며 "대화록은 국정원에 한 부 있고, 청와대에 한 부 있다고, 김만복 전 원장 등 그 당시 작성한 분들이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천 수석은 대화록 내용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2년 전 수석으로 부임해 한번 읽어봤다"면서도 "내용은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해 그 내용에 새누리당이 제기하고 있는 NLL 폐기 발언이 들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철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즉각 현안 브리핑을 갖고 공세를 이어갔다.
이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을 찾아 "(국감에서)천 수석이 당시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화록을 본적 있다고 주장했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국정원에 한 부 있고, 다른 한 부는 대통령 기록관에 있기 때문에 천 수석이 보았다는 대화록은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수석이 분명히 봤다고 이야기 한 만큼 민주당에서는 그 내용을 하루 속히 밝혀서 국민들에게 안보불안감을 씻을 수 있도록 동의해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이같은 주장은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의혹을 스스로 정면 부인하는 것이어서 향후 기록폐기 의혹을 주장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적어도 천 수석이 대화록을 봤다는 시점이 2010년이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의혹은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1급 국가기밀을 합법적인 절차없이 열람한 사실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비서관이 국가 1급 비밀을 마음대로 열람해 기록물관리법을 어기고 있다고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대화록에 대한 접근 열람권을 갖고 있느냐"고 집중 추궁했고, 천 수석은 이에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대통령기록물을 본 것이 아니라 대화록을 봤다"고 답했다.
박수현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공개를 요구한 행동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어긋난 것으로 정략적 퍼포먼스"라며 '관련법이 정문헌 의원이 2005년 대표 발의한 법안이 모태가 된 것이라는 게 밝혀졌는데 본인이 내놓은 법을 무시한 채 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 공개 주장이 자가당착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록물 생산량만 봐도, 참여정부는 825만여 건으로 이전 8명의 역대 대통령의 기록물을 합친 33만여 건에 비해 훨씬 많은데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 폐기 주장은 견강부회에 그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정문헌 의원이 통일비서관 시절 대통령기록물을 보았다면, 그 내용 여하를 불문하고 공무상비밀누설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받아야 하고, 보지 않았다면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회에서 원만히 협의해서 (기록물 열람권 문제를)풀어야 한다"고 답했다.
더욱이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과 관련 "이면합의는 있지 않다"고 밝힌 것도 새누리당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비밀회담'과 '이면합의'의 존재가 현 정부의 통일부장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인됐기 때문이다.
류 장관은 이날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단독 비밀회담을 가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소수 배석자가 있는 회담을 했다"며 "이것을 남북에서 단독회담이라고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참여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등이 이미 설명한 것으로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간 공식 회담록을 의미한다.
그래서 류 장관은 "통일부는 2차 남북정상회담(2007년) 대화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대화록을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실장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시절 관련 기록물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직책을 떠난 후에 그 일에 대해 가부간 말하지 않는 게 공직자의 도리"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현재까지 천 수석이나 류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볼 때 공식적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이외에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비밀회담 대화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남북 정상 대화록을 봤다는 천 수석의 발언으로 볼 때, 적어도 대화록이 폐기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현 정부에 넘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 가지 남은 의문점은 류 장관은 대화록을 보지 못했는데, 천 수석은 대화록을 봤다는 점이다. 따라서 천 수석이 어떤 경로로 대화록을 봤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