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시달리는 보험설계사..원인은 '4중고'

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월 수입 축소·무너진 변액보험 시장
줄잇는 생보사들의 온라인 시장 진출·즉시연금 가입자 축소
"월 급여 50~60만원 설계사 '수두룩'"

입력 : 2012-10-26 오후 5:56:27
[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16만명에 육박하는 보험 설계사들이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4월 수수료 체계 개편으로 선지급금이 축소돼 당장 매월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든 데다 변액보험 시장도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 시장 급성장으로 생명보험사들의 온라인 시장 진출이 줄을 잇고 있고, 즉시연금 세제개편으로 가입자들 대폭 축소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설계사 판매 비중은 줄고 설계사 수는 늘고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면채널인 설계사 판매 비중은 2008회계연도 39.7%, 2009회계연도 30.2%, 2010회계연도 23.2%, 2011년 22.1%, 2012년 6월말 현재 19.3% 등으로 판매 비중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지난 7월말 기준 설계사 수는 15만8200여명으로 1년 전에 비해 7000여명 늘었다.
 
경기불황으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줄줄이 보험업계로 입문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악화된 영업환경 속에서 줄어든 '파이'를 놓고 설계사 간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수료 체계 개편..줄어든 수수료
 
우선 설계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한 것은 올 들어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면서부터다.
 
생명보험업계는 지난 4월 금융감독당국의 소비자 보호정책에 따라 저축성보험의 해약환급금을 높이기 위해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
 
수수료 개편 전까지만해도 보험사들은 초회보험료가 들어오면 설계사들의 수수료를 최대 90%까지 선지급하고 나머지 10%를 3년 내에 지급해왔다.
 
선지급 수수료가 높았던 이유는 보험 계약 초기에 수수료를 많이 지불해 설계사들의 성취 동기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당을 챙기고 보험사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철새 설계사' 증가로 이른바 '고아계약'건이 많아지자, 설계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고객들이 보험을 해지할때 지급하는 해지환급금이 너무 낮다는 지적에 따라 보험사들은 같은 시기 가입 후 2~3년 내 해지환급금을 10~30%까지 늘리고 수수료 체계를 일제히 개편했다.
 
현재 설계사들의 수수료 중 선지급되는 부분은 전체 수당의 50~70%에 불과해 매월 통장으로 입금되는 수수료는 대폭 줄어 들었다.
 
◇변액보험 시장 붕괴도 '타격'
 
최근 변액보험 시장이 무너진 것도 설계사들의 영업환경에 악영향을 끼쳤다.
 
변액보험 시장은 지난 4월 '변액보험 컨슈머리포트' 발간 후 무너지기 시작해 판매율이 전체 평균 30%나 감소했다.
 
이 리포트에서 변액보험의 수익률이 물가 상승률만도 못하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보험을 해약하는 고객도 줄줄이 늘어났다.
 
일반적으로 설계사를 통해 보험상품을 가입한 고객이 2년 이내에 보험을 해약하면 설계사들은 받은 수당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가뜩이나 매월 수당이 줄어들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인데, 쌈짓돈까지 털어 모두 보험사로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삼성, 대한, 교보 등 국내 3대 생명보험사에 등록된 설계사 중 42%가 월 수입이 200만 원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21%는 월수입이 100만 원도 안 됐다.
 
A 생보사 한 설계사는 "변액상품의 수수료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몇달 전까지 대부분의 설계사들은 이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수수료 개편으로 수입이 많이 줄어 들었는데 지난 5, 6월 변액보험을 해지하는 고객들이 쏟아져 상당수 설계사들이 대출까지 받아 그동안 받은 수당을 보험사에 돌려줬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기침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지니까 변액보험 뿐 아니라 갖고 있는 보험상품을 해지하는 고객이 늘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설계사들이 많아졌다"며 "최근 월수입이 50만~60만 원 수준에 그치는 설계사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시장 성장..다이렉트 상품 찾는 소비자
 
최근엔 온라인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소비자들이 설계사를 통한 보험 가입보다 훨씬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는 다이렉트 상품을 찾기 시작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설계사를 통하는 것보다 보험료가 15% 가량 저렴해 진다.
 
B생보사 한 설계사는 "요즘 온라인 상품 보험료가 워낙 저렴하다보니 설계사를 통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려는 고객들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며 " 매년 갱신하는 자동차보험 상품의 경우 다른보험상품 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미끼 상품이었는데 이젠 고객들이 보험료가 싼 다이렉트 상품만 찾는 추세“라고 토로했다.
 
앞으로 온라인 채널의 성장세는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그동안 설계사 대면채널과 방카슈랑스 채널만을 통해 상품을 판매했던 생보사들이 온라인 시장으로 하나둘씩 진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달 중 금융감독원에 온라인 생보사 설립 인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한화생명도 판매채널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생보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즉시연금 세제 개편..가입자 축소 불가피
 
내년 즉시연금 세제 개편이 시행되면 설계사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비과세 혜택이 없어지고, 즉시연금에 가입하는 고객들은 종신형의 경우 이자소득세(15.4%), 상속형의 경우 연금 소득세(5.5%)를 내야 한다
 
현재 설계사들은 변액상품 대체 상품으로 즉시연금을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즉시연금의 수수료는 보험사마다 다르지만 대략 3% 내외 수준이다. 예를 들어 5000만원을 즉시연금으로 유치하면 수당으로 150만원 정도를 지급 받는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 등 빅3 생보사의 6월말 기준 즉시연금 보유계약은 2만2708건이다. 이중 1억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비중은 43.40%(9854건)로 설계사들에게 적지 않은 수익을 가져다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보험사 한 설계사는 "경기침체로 먹고살기 힘들어지다보니 보험상품에 가입하려는 고객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변액보험 시장 무너지고 즉시연금 시장까지 축소되면 설계사들은 더 이상 먹거리를 찾을 길이 없다"고 하소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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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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