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정부가 내년부터 즉시연금보험의 ‘비과세 혜택’을 없애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예치 금액에 따라 과세 여부를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즉시연금이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은퇴한 사람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은퇴 준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어 비과세 혜택을 없앨 경우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단체와 보험업계에서도 즉시연금의 비과세 혜택이 사라질 경우 은퇴자의 노후를 더욱 불안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즉시연금 가입 급증..업계는 '부담'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획재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통해 상속형·종신형 즉시연금에 대한 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즉시연금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은퇴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고령층과 절세 혜택을 노린 고액 자산가들이 집중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내년부터 즉시연금에 가입하는 고객들은 종신형의 경우 이자소득세(15.4%), 상속형의 경우 연금 소득세(5.5%)를 내야 한다.
세제개편안 발표 전 7개 주요 생명보험사 기준으로 하루 평균 184억원이던 즉시연금 수입보험료는 이후 634억원으로 치솟았다
생보사 빅3 가운데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가입액 추이는 지난 6월 1700억원(690건), 7월 2460억원(1050건)에 그쳤지만 세제개편 발표 이후 8월부터는 유입액이 8700억원(4300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생보업계 한화생명은 445억원에서 2168억원으로 약 5배, 교보생명은 195억원에서 1491억원으로 약 7배까지 폭증했다.
이처럼 세제개편 이전에 즉시연금에 가입자히려는 소비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일부 보험사들은 가입 한도를 제한하거나 아예 판매를 중단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자산운용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역마진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IBK연금보험·미래에셋생명 등을 비롯해 대형생보사인 교보생명까지 지난 9월부터 방카슈랑스 채널인 은행·증권사를 통한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채권 금리도 하락하고,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아 가입자에게 받은 돈을 운용할 곳이 없다"면서 "공시이율보다 운용 수익률이 낮아지며 역마진 우려가 커져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즉시연금상품 판매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예치금액에 따라 과세 여부 달리해야
즉시연금은 한 번에 목돈을 낸 뒤 매달 원금과 이자를 쪼개 미리 정해둔 기간 동안 연금으로 받는 보험상품이다.
연금에 적용되는 공시이율은 대개 연 4.4~4.6%로 일반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준이다.
변동금리인 공시이율이 낮아질 경우에도 연 2~2.5% 수준의 최저이율을 보장한다.
정부가 즉시연금의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액자산가들의 세금 회피 수단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예치 금액에 상관 없이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부자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어 세수 형평성 차원 즉시연금의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세법 개정안에 즉시연금에 대해 이자소득세(15.4%)를 물리는 내용을 포함시켰고, 이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는 조만간 상임위원회를 열어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국회의원과 소비자단체, 보험업계에서는 즉시연금의 예치 금액에 따라 과세, 비과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예치금액 3억원까지는 종전처럼 비과세 혜택을 주고, 3억원이 넘으면 과세해야 한다는 얘기다.
3억원은 직장 은퇴자들의 평균 퇴직금과 비슷한 액수인 만큼 탈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
보험업계 관계자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은퇴자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불만들이 제기돼왔다”며 “업계 차원에서 예치금액에 따라 과세 여부를 달리해야 한다는 점을 국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예치금액에 상관 없이 모두 과세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융계 한 전문가는 “은퇴 후 매달 적은 돈이나마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퇴직금을 즉시연금에 예치하려는 은퇴자들이 세금폭탄을 맞게 생겼다”며 “부자증세를 위한 정책 선택이 애꿎은 은퇴자를 잡을 판”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즉시연금 가입자의 55.6%가 예치금액 1억원 미만의 가입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은퇴자들의 평균 퇴직금이나 은퇴 후 최소생활비 등을 감안해 가입 상한액을 설정하거나 가입금액 중 일정부분까지는 비과세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는 보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