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세금을 덜 내려고 법원에 위조된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한 60대 남성이 결국 덜미를 잡혀 형사 피의자 신세가 될 처지에 놓였다.
법원은 판결문을 위조하고 자신과 배척된 진술을 한 증인을 위증으로 무고까지 한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채모씨를 위조판결문 작성 혐의 등으로 직무고발할 방침이다.
28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채씨는 세무서를 상대로 한 1억6000여만원대 부가가치세처분 취소 소송에서 3000여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2년 후 채씨는 "'2005년 2분기 부가가치세 1억6000여만원 중 3690여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을 취소하라'는 판결문 원본이 있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채씨의 주장대로라면 세무서로부터 돌려받게 되는 돈이 1억2400여만에 이른다.
재심 재판 내내 채씨는 '선고 당일 재판부로부터 1억2400여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취지의 판시 사항을 들었고, 선고 다음 날 법원 민원실 직원 권모씨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판결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원 직원으로부터 받은 판결문을 집 안 장롱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대리했던 변호사와 세무서측 변호사, 법원이 공모해 법원 판결과 달리 '3000여만원만 돌려받도록' 판결문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채씨의 거짓주장은 재심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판결문의 오류를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당초 담당 재판부는 '항소기간을 지났다'는 이유로 재심 소송을 각하처분 할 예정이었지만, 채씨가 증거로 제출한 판결문의 위조 흔적을 발견하고는 변론을 재개했다.
채씨가 제출한 판결문은 내용이나 기재방식도 앞뒤가 맞지 않았고, 서체가 판사들이 쓰는 문체나 글자체도 아닌 위조된 것이었다. 법관에 의해 작성된 판결문의 '판결서체'는 법관이 사용하는 한글프로그램에서만 지원되는 글씨체다.
또 판결문 정본을 표기하는 명칭의 오류, 판결문의 별지 누락, 재판부 서명란 오류, 맞춤법 오류 등 채씨가 위조해서 만든 탓에 제출된 판결문에는 여러 개의 실수가 있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법관에 의해 작성되는 판결문이더라도 사소한 오·탈자나 띄어쓰기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이 사건 판결문에는 띄어쓰기, 들여쓰기 및 맞춤법 오류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가 급조한 흔적이 역력해 합의재판부에서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법관은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판결문 작성 관리 시스템'을 이용해 판결문을 작성하기 때문에, 재판부 서명란은 법관이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생성돼 있는 것"이라며 "정본 판결문과 형식을 맞추기 위한 흔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채씨가 제출한 판결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정보화지원과에 사실조회를 요청한 결과 검색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채씨는 그러나 재심대상 판결문을 받았다는 주장을 계속했고 당시 법원직원이 증인으로 나와 '그런 판결문을 출력해 준 적 없다'고 진술하자 그를 위증죄로 고소까지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이인형)는 채씨가 동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부가가치세부과 처분 취소 청구소송의 재심을 각하 판결하는 한편,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례적으로 채씨를 직무고발 할 것을 검토 중이다.
법원 관계자는 "채씨가 법정에서 주장했던 재심사유는 국민에 대한 사법부의 신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게다가 자신과 다른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법원 직원을 위증죄로 고소하는 무고까지 범한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