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조현오 전 청장 '진실보다 의리'

정보 준 인물 3명 끝까지 함구.."그사람 다칠수 있다"

입력 : 2012-10-26 오후 3:51:3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현오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에서 공판 본기일을 뛰어넘는 설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 기일은 검찰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록 등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제출하면서 '차명계좌'는 없었다며 공세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정보를 준 인사가 누구인지를 대라며 조 전 청장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조 전 청장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만한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당시 자신이 발언을 하게 된 정보를 '여권 최고위 인사'나 '이명박 대통령 측근'도 알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자신에게 정보를 준 인사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본 게임 시작 전 검찰에 주도권 뺏겨
 
공판준비기일이란 공판기일에 앞서 공판 심리를 능률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기일이다. 조 전 청장은 본 게임에 앞서 검찰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셈이다.
 
26일 서울중앙지법 12단독 이성호 판사의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조 전 청장은 자신의 변호인 2명과 함께 출석해 공판을 지켜봤다. 정보를 준 인사에 대한 재판부와 검찰의 질문이 있었을 때엔 직접 일어나 소명하기도 했다.
 
이날 가장 큰 쟁점은 조 전 청장에게 '노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이 있는 차명계좌가 있다'는 '정보'를 준 사람이 누구인가 였다.
 
조 전 청장 측은 이날 차명계좌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 권양숙 여사에 대한 증인 신청과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명예훼손에 대한 소송 법리상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 전 청장이 차명계좌가 존재한다고 믿게 한 사람"이라며 "정보를 말해줬다는 사람을 왜 밝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조 전 청장의 변호인으로 나온 박기동 변호사는 "그 사람이 나오면 피의사실공표, 수사기밀 누설 등의 문제가 있다"며 "단순히 친분관계나 미안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 다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찰청장과 단둘이 식사할 만한 사람이 정보 줘"
 
또 "정보를 들었을 당시 조 전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이었다. 그때 사석에서 단둘이 식사를 하면서 말한 것이다. 서울경찰청장과 단 둘이 식사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에 이어 발언권을 얻어 해명에 나선 조 전 청장은 정보를 준 사람이 3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문제의 발언을 하게 된 장본인인 그 사람을, 난 홀가분할지 몰라도 그 말을 전해준 사람과 소속단체도 말려들 수 있어 곤란하다"고 밝혔다.
 
또 "발언이 크게 문제되고 나서 두 사람이 사실을 더 확인해줬다. 한 사람은 직접, 나머지는 간접적으로 확인해줬다"며 "우호적인 마음에서 말해준 사람들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은 "사건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공교롭게 그 뒤 피고인은 경찰청장이 됐고 당사자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재판장은 또 "정보를 간접적으로 들었다고 한 부분도 장소와 시간 경위 등이 특정 되어야 그 정보가 허위였는지 등에 대한 판단이 나오고 조 전 청장도 공소사실을 부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 측근도 조 전 청장과 같은 얘기한 기사 있어"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제출한 의견서에는 '노 전 대통령 주변을 수사하던 검찰이 10만원권 수표를 추적하다가 수십억이 들어있는 차명계좌를 발견했다'고 말한 여권 최고위 인사들에 대한 기사가 있다"며 "또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도 '이 대통령 측근도 조 전 청장과 같은 얘기를 했다'고 말한 기사도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또 당시 계좌추적에 대한 압수수색 수사기록을 보면 청와대 여직원 두명의 계좌 30개를 압수수색한 결과 각각 7800만원과 8200만원이 입금됐다고 나온 적 있다"며 "여성 행정관 계좌에 입금된 돈 치고는 매우 큰 돈이다. 이들을 증인으로 불러 확인하겠다"며 증인 신청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이 공세에 나섰다. 검찰은 "조 전 청장측이 추가로 제출한 의견서는 대부분 언론기사"라며 "기사 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다. 모두 '카더라'다"고 공격했다.
 
검찰은 이어 "이 사건의 핵심자료는 대검 중수부의 당시 수사 자료"라고 강조한 뒤 "대검 중수부로부터 '차명계좌' 관련 자료를 모두 받아 검토했고 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그 안에는 조 전 청장측이 의혹을 제시한 여직원들의 계좌 30개에 대한 모든 기록이 있다"며 "대부분 마이너스였고 어쩌다 있는 거래내역도 200~3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수부 자료 확인했지만 '차명계좌' 없어"
 
검찰은 "조 전 청장에 대한 수사는 조 전 청장 스스로가 정보의 출처를 거부해 수사가 막힌 것으로, 결국 중수부 자료까지 확인했지만 조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거는 없었다"며 "조 전 청장은 자신의 발언 근거를 먼저 대는 것이 순서"라고 몰아부쳤다.
 
재판부는 조 전 청장측의 문서송부촉탁신청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조 전 청장측은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수사 기록이 존재함을 거듭 주장하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중수부 기록이 없다면 그 이전의 자료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전 청장측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2008년3월부터 2009년5월까지의 압수수색영장 등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참에 과거기록까지 다 보면서 '봐라 내말이 맞지 않느냐'는 식은 곤란할 뿐더러 명예훼손을 다투는 소송법리상 맞지 않다"며 촉탁을 불허했다.
 
◇"'뛰어내리기 전날 차명계좌 발견' 발언은 '말 실수'"
 
조 전 청장측은 최초 문제가 된 2010년 3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차명계좌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말 실수'라고 주장했다.
 
조 전 청장은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전경과 지휘관 등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느냐?"며 "뛰어내리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기일에서는 "뛰어내리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지 않았느냐" 의 뜻은 전날 발견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전날 알았다는 의미라며 '말 실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느냐' 이 말은 계좌가 발견되자마자 사실관계를 숨기기 위해 바로 뛰어내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문언적 한계를 따져보겠다"고 답했다.
 
당초 이날 공판준비기일은 검찰측과 조 전 청장측의 상호 서증에 대한 인정과 부인, 증인신청의 범위 등만을 정하고 속히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여러 쟁점이 엉키면서 예정보다 길게 진행됐다.
 
재판장은 "너무 설전을 벌이지 마시라. 양측 입장 충분히 들었다"며 "지금 쟁점이 된 부분이 공판에서 집중 심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장은 이어 다음달 9일을 특별기일로 지정했으며, 이날 모든 서증조사와 증인신청 범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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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