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기자] 가족과 함께 TV를 보다가 야한 장면이 나온다면? 아마 누군가는 자리를 뜨거나 채널을 돌려버릴지도 모른다.
가족간의 대화에서도 성(性)은 금기시되고, 속된 것 또는 비밀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성은 야하거나 부끄럽기만 한 대상이 아니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문제의식으로 삼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내년 1월6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공연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는 우리가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부끄러워하는 단어들이 서슴없이 나온다.
2001년부터 공연된 이 작품은 한 명의 사회자와 두 명의 게스트가 등장해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며, 각 출연자마다 여성에 관한 다른 에피소드들을 들려준다. 기존 공연의 내용은 여성의 성기에 초점이 맞춰졌었던 반면 이번에는 ‘여성’으로 그 주제를 확대해 더 다양한 이슈를 선보인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아동성폭력과 위안부, 다문화가정 폭행, 성형 등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 ‘성교육을 받지 못한 70대 할머니의 사연’과 ‘위안부 할머니의 시’, ‘동성애자의 이야기’, ‘신음소리 강연’ 등 편치 않은, 뜨거운 에피소드들이 거침없이 폭로된다.
특히 팝아티스트 낸시 랭은 극중 소리에 민감한 변호사로 등장해 수십 가지 종류의 신음소리를 비교 •분석한다. 첫 연기 도전에 어색한 모습을 감출 수 없었지만, 객석의 남성에게 신음소리를 유도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으로 극을 재치 있게 끌어나갔다.
호기심과 민망함으로 시작된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통쾌해지고, 이에 관객들은 객석을 떠날 때 쯤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로 나눠지는 이분법적인 구도 때문에 남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2년간 이 작품을 작업해온 이지나 연출은 “초연할 때만 해도 관객들이 성인 위주였던 반면에 이제는 청소년들도 극장을 찾는다”며, “이 작품은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성에 대해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갖게 한다”고 전했다.
또 지난 12년 동안 이 작품을 이슈화시키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70대 노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 황정민은 “성에 대해 입 밖으로 소리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자신의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며, “이 작품을 보고 성을 존중하고 제대로 이해하며 나아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때 여성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여성들은 물론, 연인들에게도 서로를 이해하기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사춘기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어려운 성교육을 직접 할 필요 없이 연극을 통해 자연스러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정민, 임성민, 김세아, 낸시랭, 방진의, 이지나, 장유정이 출연하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13년 1월6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의. 02-2230-6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