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최악이다. 대내외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내년 경영환경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의 91%가 내년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36%는 투자 축소 방침을 정했고, 15%는 구조조정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기업의 투자 축소는 시설설비와 장비 등을 생산하는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신규 일자리 또한 급속히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있는 일자리마저 내놔야 하는 구조조정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가계의 추락이 불가피해진다. 소비침체는 내수산업의 불황을 낳으면서 전형적인 악순환이 전개될 수 있다. 위기인 것이다.
◇최대 불안요인 ‘내수악화’..내년 경제성장률 “2%대 저성장 지속”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5일 ‘2013년 경영환경 조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 기업은 총 433곳으로 72.2%의 응답률을 보였다.
먼저 내년 경영환경을 묻는 질문에 응답 기업의 62%는 ‘올해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 또한 29%로, 91%가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은 단 9%에 불과했다.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 시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는 ‘내수여건 악화’(46%)가 첫손에 꼽혔다. 이어 ‘수출여건 악화’(28%), ‘원자재가 등 비용 상승’(15%), ‘자금조달 애로’(3%), ‘정치 리스크’(3%) 순으로 뒤를 이었다.
내수 상황이 수출 여건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로, 기업들은 현 불황의 심각성이 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경제민주화와 대선 등 정치 변수는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의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한 우려는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묻는 질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내년 우리경제 성장률이 ‘2%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갈 것’(60%)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2.5~2.9%’ 전망이 35%로 가장 많았으며, ‘2.4 이하’도 25%에 달했다. ‘3.0~3.4%’ 전망이 31%, ‘3.5% 이상’ 비교적 고성장을 전망한 기업은 9%에 불과했다.
최근 급락세를 보이며 수출기업들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른 환율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자사 손익분기환율보다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손익분기환율은 기업 이익이 ‘0’이 되는 기준 환율로,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뜻한다.
내년도 원·달러 환율 전망에 대해 응답 기업의 58%는 ‘1050~1100원 수준’으로 답했다. 이어 ‘1000~1050원 수준’(33%), ‘1100원 이상’(7%), ‘1000원 미만’(2%) 순으로 집계됐다. 손익분기환율은 ‘1050~1100원 수준’이 48%로 가장 많았으며, ‘1000~1050원’(32%), ‘1100원 이상’(14%), ‘1000원 미만’(6%)로 조사됐다.
◇36% “투자축소” 15% “구조조정”..전형적 악순환
기업들이 내년 경영환경의 악화를 점치면서 대안으로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와 비슷하게 잡거나 축소할 것으로 보여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금년 대비 내년도 투자계획이 ‘불변 또는 비슷한 수준’이란 응답이 40%를 보인 가운데, 36%는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나마 ‘대폭 축소’(9%)보다는 ‘소폭 축소’(27%)가 많아 위안이 됐다. 반면 ‘확대할 것’이란 의견은 24%에 그쳤다.
투자계획을 축소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는 단연 ‘대내외 경제여건 악화’(77%)가 꼽혔다. 그 외 ‘자금조달 애로’(7%), ‘정책 불확실성’(3%), ‘규제완화 미흡’(2%), ‘투자관련 세제지원 축소’(1%) 등의 의견이 제시됐으나 모두 소수에 그쳤다. 이는 기업이 경기에 가장 민감하다는 것을 나타낸 결과로, 규제 강화 등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의 상관관계는 약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경제여건 악화에 직면한 기업들 중 일부는 투자 감소뿐만 아니라 구조조정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전체 응답 기업의 15%는 ‘자산매각, 인력감축, 사업철수 등 구조조정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전경련 역시 “투자 축소에 따른 간접적인 고용 감소 효과와 함께 직접적인 구조조정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차기 정부의 정책과제로는 무려 88%가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경기 부양책 실시에 대한 재계의 압박 강도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나타냈다. ‘경제민주화’를 꼽은 기업들은 8%에 불과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들의 투자심리 악화로 설비투자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내년도 취업자 증가 수가 20만명대로 추락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도 당장의 경제위기를 외면하지 말고 경제살리기에 힘을 보태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