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대선까지 꼭 21일 남았다. 한창 달아올라야 할 열기는 때 이른 한파에 묻혔다. 삶이 팍팍해지면서 정치로 눈을 돌릴 여유 또한 사라졌다. 직장 동료들 간 흔한 저녁 술자리에서조차 대선 얘기는 오가질 않고 있다. 안줏거리조차 되지 않으면서 선거는 그들만의 굿판으로 전락했다.
혹자는 프로야구에 빗대 “한국시리즈가 끝났는데, 누가 플레이오프에 관심을 기울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작 관심은 야권단일후보였는데 너무도 싱겁게 안철수가 빠지면서 관심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그만큼 새 정치에 대한 국민 열망이 높았으며, 이는 기존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과 회의 때문이었다.
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TV토론이다. 후보단일화를 위한 문재인-안철수 간 맞장토론과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면접토론 등 단 두 차례만 있었을 뿐이다. 여야 간 상대 토론은 여전히 열리질 않고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83차례, 2007년 대선에서 50여 차례가 열린 점과 비교하면 TV토론 자체가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검증의 장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국민’은 ‘말’ 속에만 있다.
이는 가열되지 않고 있는 대선 정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서로를 비교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지면서 관심과 비판과 열기는 죽었다. 알아야 뽑을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물며 정책마저 공통분모 투성인데.(물론 뜯어보면 미시적 부분에선 차이점이 극명하다.)
여야 각 캠프의 말을 종합하면 이는 전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의 책임이 크다. 박광온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28일 각 방송사의 TV토론 요청 현황을 공개했다. 먼저 SBS가 지난 13일 ‘2012년 대선후보 검증토론’이라는 이름의 양자 토론회를 새누리와 민주, 양 진영에 제안했다. 방송 일자는 28일이었으며, 문재인 후보 측은 참석을 통보했으나 박근혜 후보 측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
KBS 역시 지난 26일 ‘대통령후보 합동토론회’를 양측에 제안했다. 29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첫날 정치·외교·안보 분야, 둘째 날은 경제·사회·복지 분야를 다룰 예정이었다. 이 역시 문 후보 측은 참석 승낙서를 서면으로 보낸 반면 박 후보 측은 아직 그 어떤 답변도 보내지 않았다. KBS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박 후보 측에 마지막까지 참석을 종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외 EBS와 각 지역 민방협의회 등에서 토론회 개최를 양측에 제안했으나 박 후보 측이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선대위 공보담당 관계자는 “유세가 한창인데 각 방송사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그것도 촉박하게 일정을 잡아 연락을 주고 있다”면서 “일일이 방송사 사정에 어떻게 다 맞추느냐”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각 방송사 토론 (참석)은 현재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공식 선거전 첫날인 27일 맞장토론 제안을 시작으로 압박 강도를 높여 나가자 박선규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이 공식 대응에 나섰다. 그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번이라도 중앙선관위 주최 토론을 한 뒤 필요성과 조건을 조정해야 한다”면서 “다음달 4일까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그러자 기자들은 4일 이후 양자 TV토론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박 대변인은 이에 “본선으로 들어간 상태로, 전국에 돌아다니면서 만나야 할 사람이 내달 18일까지 다 있다”면서 “이것을 조정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상 중앙선관위 주최 법정 TV토론 세 차례 외에는 TV토론 자체에 응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상대 후보가 너무 늦게 결정되면서 시간이 촉박해져 국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릴 조건 자체가 무너졌다고 이해해 달라”면서 “박 후보는 토론을 기피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돌렸다. ‘역대 대선에서도 모든 후보들이 바쁜 일정 가운데 토론에 응했고, 이는 문 후보도 마찬가지’라는 기자들 지적에는 아무 반론 없이 돌아섰다.
앞서 박 후보 측은 일관되게 “상대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토론을 치를 수 없다. 어차피 한 명은 사퇴할 것 아니냐”며 “지금 토론에 응하는 것은 2대 1로 싸우는 것과 같다”고 강변하며 토론회를 거부해왔다. 몇몇 방송사는 패널과 후보자 간 개별토론으로 선회해 제안했으나 이 역시 같은 이유로 거부됐다.
한편 법이 지정, 중앙선관위가 주최하는 공식 TV토론은 내달 4일을 시작으로 10일과 16일, 세 차례에 걸쳐 열린다. 결국 앞선 두 차례를 포함해 총 5회가 이번 18대 대선 TV토론의 전부일 가능성이 높게 됐다. 이마저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토론자로 참석, 양자 간 맞대결은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8대 대선이 남긴 또 하나의 진기록이다.